[세상 요모조모] 예고 없이 다가오는 재난은 드물다
[세상 요모조모] 예고 없이 다가오는 재난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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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재난이란 예고 없이 다가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난은 예고 없이는 다가오지 않는다. 재난의 징조라는 게 있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하나의 큰 사건이 터지기까지는 29건의 작은 사고가 나고 300건의 징후가 드러난다고 한다. ‘원인 없이 결과 없다’ 하지 않는가.  

제천 참사는 우연일까. 오로지 사후 대응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일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후 대응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여기선 논외로 한다. 2015년 1월 의정부에서 화재가 나서 5명이 숨지고 129명이 부상을 당했다. 제천 참사는 의정부 화재 참사의 판박이이다. 같은 유형의 화재가 2014년 9월에 부천에서도 났다. 2010년 10월엔 부산 해운대의 38층 고층아파트에서 같은 유형의 화재가 났다. 똑같은 유형의 참사가 거듭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이, 국회가, 정부가, 인명이 희생된 참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되뇌기라도 해야 하는가. 

이들 화재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벽을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한 탓에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최상층까지 번졌고 유독가스가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음에 내몰렸다.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 사회가 정신을 차릴 것인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하지만 한숨만 쉬고 있다 보면 다음 차례는 바로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이웃의 목숨에 무관심 했다가 내 목숨이 위협 받게 될 때야 나서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는 이미 깊이 병든 사회다.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내가 아픈 사회, 다른 사람이 기쁘면 내가 기쁜 사회, 이런 사회가 진정 인간이 사는 사회이고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조화로운 공동체이다. 

이번 제천 참사를 보면서 또 한 번 주목해야 할 대상이 바로 필로티 건물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필로티는 ‘2층 이상의 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벽면 없이 기둥만으로 떠받치고 지상층을 개방시킨 구조의 건축물이나 그러한 공법’을 말한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명분은 서민 주거난 해소였지만 실제는 건설경기를 띄우기 위해 도시형생활주택을 대량 보급하고자 했다.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지하 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필로티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배경이다. 불에 잘 타는 가연성 외장재가 일반화된 시기와도 겹친다. 

윤영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도시형생활주택 1만 4000동의 88%가 필로티 건물이다. 1만 2000여 동이 필로티 구조라는 말인데 주차장에 화재가 났다 하면 건물 전체로 번질 확률이 99%다. 포항지진과 의정부 참사, 제천 참사에서 보았듯이 필로티 방식의 건축에서 안전은 뒷전이다. 사람은 어찌 되든 건설 경기만 진작되면 되는 것일까.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정치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가 문제를 꼬이게 했으면 푸는 것도 정치일 수밖에 없다. 필로티 구조도 가연성 외장재 문제도 정치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된 정치를 정치권 스스로 바로잡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주권자인 시민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깐깐하게 간섭을 해야 한다. 가만있으면 바보 된다. 주권자가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이미 주권자가 아니다. 시민이 시민성을 잃으면 시민이 아닌 것과 같다. 

지난 5월 국민항쟁의 힘으로 새 정부가 탄생했다.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조금 있으면 일 년이 된다.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고 멈추는 법이 없다.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흘러 자기 갈 길을 열심히도 달려간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 남짓 지났는데 낚싯배 참사, 제천 참사 같은 큰 참사가 연이어 터졌다. 타워크레인 참사도 연달아 터졌다. 칼럼을 쓰는 이 시간에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버스 타고 있던 행인이 사망했다. 지진이야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지만 이들 사고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정부 인사들은 할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이건 전임 또는 전전임 정부가 잘못한 탓이고 저건 구조적 적폐의 결과이고 또 다른 건 현장에서 잘못 대응한 것이고 하면서 변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정권 담당자들과 정부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남 탓하면 참으로 못난 사람이고 무책임한 정부다. 누구든지 ‘남 탓’을 쭉 열거하는 사람은 자기 개혁을 할 수 없다. 내 잘못이 없는데 무엇을 개혁한단 말인가. 

의정부 참사와 제천 참사 때 문제가 된 필로티 건물과 가연성 외장재 문제를 또 그냥 대충 덮거나 땜질식으로 넘어가면 참사는 예견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확실하게 고치자. 핵심은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가연성 외장재는 불연재로 전면 교체하는 것 말고 답이 없다. 필로티 건물은 신축 금지하고 기존 필로티 방식의 건물은 화염과 유독가스의 분출구로 작용하는 건물 연결용 출입문을 폐쇄하고 별도의 출입문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1층을 주차장 용도로 쓰는 걸 제한하고 주차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소급입법을 만들어서 안전을 보장 받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이제 결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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