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약 17만건의 낙태(임신중절) 수술이 이뤄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연간 낙태수술은 훨씬 그 이상이다. 성에 대한 인식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청소년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면서 여중고생들, 대학생들 사이 음성적으로 행하는 낙태수술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찬반 측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 청원에 23만 5000명 이상이 동의했다. 여기에 지난달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제한적 폐지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현행 낙태죄에 대한 법 개정 추진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

정말 많은 여성들이 현재 불법으로 낙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받는 건수는 연간 10여건에 불과하다. 낙태죄법이 별로 실용화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법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인터넷시대, 성의 오픈화, 과거와 달리 길거리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스킨십하는 젊은 남녀 수 증가, 학교의 형편없는 청소년 성교육 등은 앞으로 더욱 많은 낙태수술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더욱 많은 여성들이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사실 필자는 낙태죄 유지에 찬성한다. 낙태죄 유지 측은 아무래도 생명 존중을, 폐지 측은 자기결정권을 이유로 들 것이다. 필자가 걱정하는 부분은 낙태죄가 폐지되고 불법이 아니라면,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 청소년들과 여대생들이 병원을 찾아 낙태를 할 것인가.

청소년 시기의 성관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분별한 낙태가 증가할 때 과연 여성들의 소중한 몸과 마음은 얼마나 더 큰 상처를 받게 될까 염려된다. 필자는 종교단체가 주장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 폐지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사회적 큰 혼란과 임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분위기가 더욱 크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정부부처에서 한국의 성교육 실태를 체크하고 피임법, 낙태과정을 통해 얼마나 몸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지 등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계화 된 조기 성교육이 절실해 보인다. 현재 젊은이들은 첫 성관계 연령이 낮아지고 있으며 성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미비하다. 낙태법 찬반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부터 현실적인 성교육부터 차분히 진행돼야 한다.

현행 낙태죄도 적지 않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이 이야기한 것처럼, 낙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여성과 병원에게만 몰아가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낙태에 대한 책임을 남녀 모두로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공동의 책임으로 수정돼야 한다. 필자는 현재 여대생들의 낙태죄에 대한 의식이 궁금해 수업 중 질문을 했다. 10명 중 7명은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으며, 가장 큰 이유로는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큰 이유였다. 임신하고 아이를 지우든, 낳든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에 낙태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낙태죄 유지에 찬성하는 소수의 여대생들은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결과는 부득이한 결과를 제외하곤 본인의 책임이며, 그 책임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영국, 이스라엘, 일본 등 10개국을 제외한 25개국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본인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여성이 가져야 할 기본 권리로 보고 있다.

이진성 헌재소장을 비롯해 다수의 재판관도 ‘임신 초기(12주 이전)의 낙태까지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며 낙태죄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낙태죄에 대해 변화가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다만, 일방적인 예스 또는 노우의 변화보다 청소년기부터 진행되는 충분한 성교육과 낙태의 위험성,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철저한 사전 교육이 필요하며 이젠 국가도 다수의 여론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낙태에 대한 국가적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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