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요즘 영화 ‘택시운전사(연출 장훈)’가 화두다. 실제 인물인 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시각으로 조명된 택시운전사는 금남로와 광주시내를 오가며 5.18의 참상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렸다. 영화는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대학생을 중심으로 계엄해제와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 5.18의 참상을 리얼하게 그리며 주목받고 있다. 영화가 요즘 10대, 20대가 잘 인지하지 못하는 1980년 시대적 배경과 리얼리티, 미장센을 잘 담아낸 것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결국 공감, 감동, 휴머니즘이 잘 조합되며 영화는 흥행의 원동력을 보여줬다. 정권도 바뀌면서 택시운전사를 비롯한 보다 더 많은 진보적 성향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어떤 영화는 보수정권을 비판하거나 군사독재 시기 산업화와 함께 성장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비판할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서 필자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정치적 프레임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택시운전사, 군함도, 청년경찰을 포함해 CJ, 롯데, 쇼박스 등 대기업 자본들이 들어간 큰 영화들에 국민들이 열중하다 보니, 그밖에 나머지 작은 영화들이 소외당하는 현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문화예술의 근간인 자율성과 다원성이 보장되고, 많은 영화인들이 추구하는 창작성이 보장되는지 의심스럽다. 지금도 극장을 찾아보면 CJ, 롯데, 쇼박스가 배급한 영화들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영화 제작은 물론 배우 캐스팅, 투자·배급·상영까지 대기업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감독이나 제작사가 관객들과 마주하기 힘들 정도다.

3개의 영화 투자배급사는 서로 경쟁하면서 1년 라인업을 통해 영화 흥행을 위해 올인한다. 만약 CJ가 투자 배급한 영화가 봄에 좋지 않은 스코어를 냈다면, 가을에 개봉하는 큰 영화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로 사이클은 돌아간다. 결국 상업영화를 통해 일반 관객들과 마주하고 싶은 감독들은 3개의 투자배급사 입맛에 맞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배우캐스팅, 투자시기, 크랭크인, 시나리오 부분수정 등 투자배급사의 손이 뻗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멀티플렉스 측은 관객의 수요가 많아지면, 상영관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스크린 확보가 되며 저예산 영화들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수 있다고 영화인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독립영화 전용관들이 사라지고 있고 대기업이 투자·배급·상영 등 모든 것을 장악한 수직계열화 시스템 환경에서 일반 관객들이 작품성 있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 다큐멘터리 등 아트 영화를 만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일반관객들이 작은 영화, 작은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고, 무명배우나 낯선 이야기에는 극장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대기업 투자배급사를 탓하기보다 관객들의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다양한 작은 좋은 영화들을 공급하지 않는 영화적 환경도 문제지만, 좋은 스토리텔링과 좋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무명배우가 등장하는 작은 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관객들의 개념이 더 큰 문제라는 이야기다. 중소 영화제작사들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관객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실과 돈이 지배하는 수익구조는 결국 투자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상업적인 부분을 넣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친서민적 영화 택시운전사에 관객들이 주목하고 극장을 찾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대기업 독과점 영화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상업영화만 판치고, 저예산 영화가 죽은 영화 세상에서는 약자의 시각을 그려내고, 사회 부조리와 잘못된 정치현실을 비판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관객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상업영화만 편식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양극화와 기득권·특권의식 앞에 무너진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작은 영화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극장을 찾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월트디즈니사, 워너브러더스나 20세기 폭스사 등 6대 메이저 영화사들은 극장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정해놓고 있다. 법적 규제가 없다면 할리우드 영화마켓은 메이저 영화사들의 독과점으로 한국처럼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창작 스토리에 도전하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이 더욱 줄어들지 모른다. 지금 한국영화 시스템을 뜯어 고치지 못하면, 앞으로도 대형 배급사와 중소 배급사와의 빈익빈 부익부 편차가 심해지고, 저예산 영화들은 설 곳을 잃어가며 양극화는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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