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35년 전인 1982년 9월 어느날이었다. 남한산성 밑 거여동 높은 구릉지에 자리 잡은 부대에선 밤이 되면 멀리 잠실야구장의 휘황찬란한 조명불이 보였다. 지금과 같이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과 아파트숲이 생기기 전이라 맑은 날 밤에는 잠실야구장 너머 남산 타워에서 반짝이는 불빛까지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잠실야구장에선 OB 투수 박철순이 괴력의 22연승 대기록을 한창 세우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해 학군 장교(ROTC)로 임관, 소위로 근무하던 필자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대학 동기로 같이 임관한 친구가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자살했다는 것이다. 대학 학군단 후보생 때 같이 축구를 하고 체력을 키웠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야구팀이 있던 서울 성동고 출신의 친구는 고교 때의 인연으로 야구를 좋아하고 축구도 사랑했었다. 학군단 시절에 만난 친구와 필자는 장교로서의 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각종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름방학 때 군사훈련을 받던 문무대(현재 학생군사학교)에서나 학교 운동장에서 자주 축구를 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키 크고 건장한 체격의 친구는 지적으로도 아주 성숙한 모습이었다. 

친구가 정상적으로 2년 4개월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제대해 직장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했다면 아마도 스포츠기자를 했던 필자와 자주 잠실야구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황홀한 야구잔치를 보며 군대의 추억과 경험담을 주고받으며 조용한 일상을 보냈으리라. 

하지만 친구는 이러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군대에서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했다. 당시 군 헌병대는 친구가 염세적이고 겁이 많고 무능한 이로 세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매사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체력적으로나 지적으로 탁월한 것으로 알고 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친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실 친구는 아버지가 언론사 간부였고, 친형이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다복한 집안이었는데, 자살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았다. 친구의 아버지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군의 영향력이 컸던 5공화국 정권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자를 포함한 대학 학군단 동기들은 군에서 제대하고 서로 돈을 갹출해 친구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고려해 묘소에 마리아상과 비석을 마련해 주었으며 30주년 때에도 별도의 비석을 하나 더 설치해 주었다. 그의 아까운 젊음을 아쉬워하며 동기들은 뜻을 같이하고 우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최근 친구의 유가족이 친구의 의문사에 대한 재조사와 순직처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친구가 M16 소총을 머리에 쏘아 자살한 것으로 당초 헌병대 조사가 밝혔으나 총탄이 들어가고 나온 구멍이 거의 같아 M16 소총이 의문시되며 다리 정강이와 눈자위에 상처가 나 있는 현장을 목격했던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또 친구가 죽기 2일전 마지막 일기에 “나도 침묵을 지키면 동조자가 된다. 말해야 한다. 그에게 말했다. 최후통첩을 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정의와 양심은 자살신청서(타인에 의한)나 다름없고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에는 두려움과 벽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남과 북이 맞서 있습니다. 목적은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라는 글귀를 보냈는데 이를 별도의 사본으로 진정서와 함께 붙였다.

6.25전쟁 참전 용사였던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 기간 내내 현역으로 복무하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 지내다 지난해 타계해 동작동 현충원의 충혼당에 안장됐다.

친구의 형을 비롯한 유가족은 “대한민국 국민 중 그 누구도 군에 자살하러 입대하는 젊은이는 없습니다. 국가는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국가의 부름에 따라 군에서 복무한 것이므로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야 하고 고인과 유족들에 대하여 정중한 예우를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친구의 죽음과 관련된 진상이 밝혀지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친구는 고 김영민 소위이며 최전방 양구의 21사단 GOP 중화기 중대 소대장으로 부임 3개월 만에 죽음을 맞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