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대한민국 배구협회 박범창 사무국장은 내년 정년을 앞두고 요즘 마음이 무겁다. 벼랑 끝에 선 아마배구계의 현실이 그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수십년간 협회 일을 맡았던 그이지만 최근처럼 어려운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한때 프로배구가 협회에서 독립해 나가면서 아마배구계가 많이 위축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버틸만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예전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회장이 전례없이 탄핵을 당한 뒤 6개월째 공전을 거듭하며 협회 안팎살림이 아주 쪼들리기 때문이다.

박범창 사무국장은 최근 상반기 회계 결산표를 보고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결산표 도처에 빨간 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회장의 지원금이 들어와야 돌아가는 협회가 일체의 회장 지원금 없이 살림을 꾸려간 것이 벌써 3년여째다. 정치인 임태희, 경기인 박승수에 이어 지난해 서병문 전 회장까지 돈을 제대로 내놓지 않아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하며 직원들 봉급을 겨우 막고, 협회에서 주최하는 각종 국내외 대회 경비지출을 대야 했다. 

지난해 말 서병문 전 회장이 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 탄핵을 당하면서 협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서 전 회장이 대의원들의 탄핵에 불복, 서울중앙지법에 해임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협회는 이에 대응해 비상대책위가 서 전 회장에게 법률적으로 맞서는 바람에 행정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4월 1심에서 협회가 승소를 했으나 서 전 회장은 불복, 2심을 신청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박범창 사무국장은 회장 부재 상태에서 월드리그에 출전하는 남자대표팀의 지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마른 수건을 짜듯이 협회 돈을 탈탈 털어내며 어렵게 대표팀의 운영비를 충당했다. 남자대표팀이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2그룹에서 중간순위를 확보, 3위그룹으로 밀려나지 않을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동안 아마배구계는 오랫동안 프로배구와의 마찰로 인해 프로배구 연맹체인 KOVO로부터 거의 재정적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대표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선 라이벌 중국과 일본이 2진을 출전시켜 절호의 우승 기회를 가졌으나 프로팀들이 대표팀 주력 멤버들을 부상 등을 이유로 선발을 꺼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전력을 갖추지 못하고 3위에 그쳤다. 지난 수년간 월드리그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프로팀들이 스폰서나 A 보드 광고 지원 등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협회 운영이 매우 어려웠다.

프로 측에서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마 측과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큰 이유였다. 지난 수년간 협회장이 프로 측과의 대화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존심’을 고수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협력적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프로배구가 프로농구보다 인기를 누리며 수입을 올림에도 불구하고 아마배구를 잘 지원해주지 않아 협회는 운영이 매우 곤란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는 30일 협회 회장선거를 치르고도 넘어야 할 산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선거인단 투표로 새 회장이 선임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누적된 협회 예산 적자문제, 서 전 회장의 항소심 결과 등 악재가 산적해 있다. 협회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조직 자체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회장의 돈줄에 과다하게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다. 특히 이번과 같이 예기치 않은 회장 관련 송사에 휘말릴 경우 걷잡을 수 없이 행정이 마비될 소지가 많다.

대부분의 배구인들은 협회가 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새 회장을 잘 뽑아 새로운 기틀을 잡아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협회가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 도약의 길을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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