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된다. TV가 귀한 시절이라 스포츠 중계를 대부분 라디오로 들었다. 당시 킹스컵, 메르데카배 국제축구대회, 고교 야구대회 등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소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중계방송을 들으면서 스포츠캐스터(당시는 그냥 아나운서라고 불렀다)를 흉내 내는 게 유행을 했었다. “고국에 계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등의 감성적인 멘트로 시작하는 이광재 전 KBS 아나운서의 중계방송을 듣노라면 절로 애국심이 솟아나고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당시 스포츠 중계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말 잘하고 주위 분위기를 이끌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이광재 아나운서의 말과 습관을 따라하곤 했다. 필자는 아나운서 흉내 내기를 좋아했다. 스포츠를 즐겼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이를 따라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모이면 전날 라디오로 들었던 중계방송 얘기를 하며 아나운서와 흡사한 목소리 연출을 하기도 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때의 일이다.

옛날의 스포츠 방송 추억이 떠올랐던 것은 최장수 스포츠캐스터로 기네스에 올라있는 미국의 원로 스포츠캐스터 밥 울프가 최근 96세를 일기로 타계를 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서다. 그는 스포츠캐스터에서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의 죽음은 스포츠 방송의 한 획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라디오로 시작해서 TV를 거쳐 멀티미디어 시대까지 스포츠방송인으로 활약했던 것이다.

1920년 뉴욕 태생인 그는 듀크대학교 신입 시절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스포츠와 연을 맺었다. 그러다 발목 부상을 겪고 선수 생활을 접은 뒤 1939년 듀크대 라디오방송으로 첫 중계를 시작했다. 미국프로야구(MLB) 워싱턴 세너터스(현 텍사스 레인저스), 미국프로농구(NBA) 뉴욕 닉스, 북미아이스하키리스(NHL) 뉴욕 레인저스 등 여러 프로 구단의 경기 실황 중계를 맡았다. 북미 4대 프로 스포츠 챔피언전을 유일하게 중계한 그는 78년간 스포츠캐스터로 활동하며 미국 스포츠방송 역사상 최장수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에 올랐다. 중계할 방송이 있으면 고령의 나이에도 ‘평생 현역’을 지키려 했던 그만큼 오랫동안 스포츠캐스터로 활동한 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선수 은퇴 후 대학야구 코치가 “메이저리그에서 운동을 할 기회를 잡고 싶다면 말하는 것을 계속하면 된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스포츠캐스터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축구 등 다양한 중계를 하면서 베이브 루스, 타이 콥, 미키 맨틀, 테드 윌리엄스 등 전설적인 야구 스타들을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 야구 명예의 전당 방송 부분상을 수상했던 그는 언론인의 마음과 연예인의 기질을 갖고 열심히 일했던 스포츠캐스터로 평가받았다.

우리나라도 지난 수십년간 크게 성장한 스포츠 시장에 걸맞게 밥 울프에 비할 바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많은 스포츠캐스터들이 역할을 하며 스포츠 문화를 이끌어왔다고 본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현지 중계방송을 위해 파견됐던 KBS의 민재호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1950~60년대 임태근, 이광재 아나운서를 거쳐 많은 명 스포츠캐스터들이 배출됐다.  1980년대 이후 프로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등에서 전문 스포츠캐스터들이 등장하며  연예인에 못지않은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인기직종으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캐스터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낙타가 바늘구멍보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심하는 모습이다. 

스포츠캐스터는 단순히 얼굴이 잘 생기고 말만 잘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스포츠팬들과 소통과 공감을 이루고 전문성을 발휘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똑똑하고, 즐겁고, 기발한 생각으로 성공적인 스포츠캐스터의 길을 걸었던 밥 울프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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