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셰르부르의 우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지붕위의 바이올린, 카사블랑카…’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뮤지컬? ‘땡’이다. 이 중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셰르부르의 우산,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유명한 음악영화이다. 하지만 카사블랑카는 뮤지컬이 아니다. 정답? 네 영화의 공통점은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느비에브와 기이의 사랑의 테마 ‘아이일 웨이트 포유(I'll wait for you)’로 유명한 셰르부르의 우산은 씁쓸하고 허탈한 느낌의 묘한 엔딩 신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다. 사랑하던 기이가 군에 입대한 후 그리움 속에 나날을 보내던 주느비에브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임신한 채로 부유한 보석상과 결혼한다. 제대한 기이는 방황하다 다른 여자와 결혼해 주유소를 운영한다. 함박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주느비에브가 딸을 데리고 셰르부르에 왔다가 우연히 그 주유소를 들른다. 둘은 서로를 보고 놀라지만 두 번 다시 사랑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짧은 대화만 나누고 헤어진다. “잘 지내?” “응, 잘 지내.” 둘이 무덤덤하게 나눈 대화 내용이다. 딸을 만나보겠느냐는 주느비에브의 말에 기이가 고개를 흔들며 거절한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필자가 고등학생 때였다. 그렇게 사랑하던 두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짤막한 말을 남기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리타분한 동양적 사고방식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긴 여운이 남았다.

뉴욕 이민사회가 무대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인 샤크파의 구역 다툼 속에서 만난 연인 토니와 마리아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현대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토니의 시신을 제트파와 샤크파가 함께 운반하는 마지막 장면이 화해와 용서를 암시하지만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리아역을 맡은 내털리 우드의 절규가 큰 울림을 주었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러십니까?”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에서 테비에는 딸들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결혼을 잇달아 선택하자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결국 시대의 변화를 수용한다. 우크라이나의 한 작은 마을에서 우유가공업을 하며 순박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아버지다. 유태인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가려고 하는 그였다. 새 삶을 찾겠다는 딸 셋과 헤어진 그는 결국 정들었던 유대인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나 미국을 향해 떠난다. 쓸쓸한 뒷모습에 슬픈 바이올린 선율이 흐른다. 험프리 보가드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녀주인공 릭과 일자를 맡은 전쟁 멜로드라마가 있었다. 카사블랑카. 주옥같은 대사와 코믹한 내용, 의외의 반전 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피난 때 헤어진 연인 일자와 기적처럼 재회한 릭은 일자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레지스탕스 남편 빅터 라즐로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낸다. 영화는 카페에서 흐르던 노래 ‘세월은 흐르건만(As times go by)’의 잔잔한 감동이 버티 히긴스의 팝송 카사블랑카로 이어질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대본을 매일같이 수정하다보니 릭과 일자의 운명도 헤어지는 쪽으로 촬영 마지막 무렵 확정됐다고 한다. 실제로 릭처럼 사랑하는 일자를 애써 떠나보내고 만다면 두고두고 아픔이 클 것 같고.

주마등처럼 줄지어 필자 머릿속을 지나간 시네마들이었다. 라라랜드를 뒤늦게 관람할 때였다. 영화제목이 꿈의 도시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LA)를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라는 뜻이라고 한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을 제작진이 롤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그중에서도 셰르부르의 우산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남녀주인공이 노래하는 장면, 파스텔톤 색감, 클래식한 분위기, 남녀가 서로 다가갈 수 없는 운명의 마지막 파이널까지.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마을에서 꿈꾸듯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사람. 그러나 사랑이 꿈과 목표를 좇는 일과 양립되지 못해 끝내 헤어지고 만다. 둘은 서로를 위해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그만 둘 사이가 멀어지는 쪽으로 스토리가 흘러간다. 그리고 우연한 재회, 밀려드는 뜨거운 회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좀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필자는 경색된 남북관계와 남북이산가족 문제가 가슴속에 오버랩됐다. 사랑하면서도 현실의 삶은 함께 하지 못하는 연인을 그린 영화 라라랜드를 보면서 말이다. 북핵·미사일 문제로 촉발된 원유공급중단 등 대북제재방안, 미국의 군사옵션 선택설, 정부의 남북대화 노력 등도 뇌리에 떠올랐다. 영화는 엔딩 신이 슬플 때 관객을 울리며 진한 감동을 남긴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비극적 종결은 곧 파멸이다. 북핵 외교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비극 아닌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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