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중국에서 어떤 스님이 동산양개스님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피하시렵니까?” “왜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추울 때는 자네도 춥고 더울 때는 자네도 더우면 되지.” 불가(佛家)에는 피서에 관한 비슷한 얘기가 또 있다. 조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처럼 무더운 날씨에 어디서 피서하려느냐?” “확탕·노탄 지옥에서 하겠습니다.” “지옥에서 어떻게 피서를 하겠느냐?” “전혀 괴롭지 않으니까요.” 황룡오신 스님이 말했다. “선(禪)을 가까이함에 산과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음이 사라지면 불기운은 저절로 식는다.”

이 같은 선문답 내용을 깨우쳤다면 부처 뽑는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것이리라. 스님들이 공부하는 참선 지침서 가운데 단연 제1서로 꼽히는 벽암록 제 43칙에 나오는 얘기다. 시냇물을 건너다 확철대오했고, 조동종의 개조로 불리는 동산스님의 ‘동산무한서(洞山無寒暑)’이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속인에게는 완전 언어도단이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만 왠지 그와는 다른 심오한 뜻이 있을 것만 같다. 영혼의 피서라고 생각해보자. 이런저런 집착과 망상에 시달리던 마음이 문득 한 생각을 쉬면 피안이다. ‘이 몸이 나’라는 헛된 생각에 끄달리지 않고 무아·무심에 머물면 초연한 참자유인의 경지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몸이 어디에 존재하건 추위와 더위 같은 것은 초월한다. 별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혹독한 추위와 푹푹 찌는 무더위가 있는 곳, 윤회와 인과가 되풀이되는 이 곳 세속에서 부처가 되고 참나가 된다는 것. 중생이 원래 부처인데 망념에 눈멀어 잊고 있다는 것 아닌가. 성불(成佛)이란 새로 부처가 되고 따로 진아(眞我)의 형상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아집에 함몰된 삿된 망념을 벗어나기만 하면 원래 청정광명한 자성(自性)을 회복한다는 것이니 이 공부야말로 참으로 가슴 뛰는 혁명적인 사업(?)인 셈이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 있으랴. 어디 몸을 숨긴다고 벗어날 수 없다. 선학(禪學)의 경지에서 보면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을 뿐이다.

여름휴가철이다. 어떤 피서가 좋을까. 피서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시쳇말로 ‘멍때리며’ 한번쯤 지내보자. 모처럼 힐링 타임이 될 것이다. 독서삼매도 좋겠다. 읽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미뤄둔 양서(良書)에 파묻혀 더위며 세상이며 인간사를 다 잊고 지내보는 것도 유익한 심신재충전 방법이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에 이왕이면 선승처럼 묵묵히 화두(話頭) 삼매(三昧)에 몰입해 봄은 어떨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을 찾으며 말이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는 ‘이뭣고?’이다.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의 줄임말인데 벽암록 51칙에 나온다. 이는 결국 ‘무엇이 부처인가?’ ‘나는 누구이며 삶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는 획기적인 동양 수행법이요, 한국식 진리 탐구법이다.

피서를 못가는 이들도 많다. “웬 여름휴가?”라며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이도 있다. 구슬땀을 흘리며 노동 현장에서 무더위와 싸우다 “아휴, 내 팔자야!” 하며 탄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히려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신성한 노동으로 망념을 잊고 초탈한 삼매의 경지에 이른다면 알찬 생활선(生活禪)이 될 테니. 대입수험생들은 평소 부족하다고 느낀 과목이나 단원을 집중학습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혹서기이지만 이기적인 나를 넘어 이웃에 대한 봉사와 베풂으로 보람되게 지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에고를 넘어선 사람이야말로 ‘복 받은 이’다. 그가 선택한 보시(布施)의 나날들은 어쩌면 선서(禪書)에서 화두로 던진 ‘추위도 더위도 없는 (보배로운) 곳’에서 지내는 황금 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제목의 법정스님 법문집이 있다. 책 제목 ‘일기일회’라는 말부터 의미심장하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뜻이라고 하겠다. 스님은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한번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때 그 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말씀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삶을 보람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계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상에 지치기 쉬운 심신이다. 피서철. 자신의 삶을 활기차고 의미있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개인혁명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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