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파도가 밀려왔다 나갔다 하듯이 사람의 일은 뭔가 좋은 일 나쁜 일이 항상 바뀌고 순환한다. 꼭 좋은 일만 또는 나쁜 일만 줄기차게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국 방문에서 외교적 자신감에 충전(充電)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좋은 일들만 계속되고 있진 않다. 그는 성공적으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이끈 후 ‘대북 문제에서 운전석에 앉게 됐다’고 자신감을 피력했었다. 그런데 그 말의 입김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를 실망시키는, 말하자면 ‘방전(放電)’ 현상과 같은 것이 대외적으로 생겨나 김을 뺀다. 

문 대통령은 대북 문제에서 미국과 현행의 압박 공조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대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임을 트럼프에 강조하고 설득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유연성과 차별화를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떡 줄 생각이 추호도 없는 북 앞에서 김칫국을 먼저 마신 꼴이 되고 말았다. 북은 관영 매체를 통해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는 있을 수 없을 것임을 못 박았을 뿐만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험 발사함으로써 완전히 그런 구상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저들의 이런 태도는 실로 문 대통령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선의와 호의로써 평화적으로 비핵화를 이루고 민족문제를 풀어 보려는 구상과 노력에 대한 배신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입장에서 저들의 일탈과 우리의 기대에 대한 배신의 요인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열린사회에 사는 우리의 합리성과 이성만으로 재단하면 저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다. 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들에게 가장 중요하며 우선적인 관심사이자 뜨거운 현안은 정권안보(政權安保)다. 이것에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저들에게 없다. 인민과 인민의 민생은 배려 대상에서 순서상 어디에 끼이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되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지 말고 대화의 장으로 되돌아오라는 문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는 우리에게는 감동적이지만 저들의 판단 잣대로는 아닐 수 있다. 

한마디로 저들은 우리와의 대화를 두려워하는 것일 수 있다. 저들이 건너는 다리는 재앙(災殃)으로 안내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되돌아오라는 신호를 선뜻 못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알든 모르든 되돌아오는 것보다는 건너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차라리 더 익숙하고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바로 정권안보라는 잣대에 의한 판단 때문이다. 핵 개발이 저들을 심각한 골병에 들게 했지만 이제 와서는 핵 개발 성과 외에 저들이 인민에게 내세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는 건너던 다리에서 회군할 기회를 놓쳤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더라도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그들에게 마지막 행운의 찬스(chance)가 되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거절한 것은 그들의 결정적 오판이다. 이런 기회는 그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저들은 하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택해 ICBM 화성-14호를 시험 발사했다. 미국을 놀렸다. 이 마시일은 고도 2800킬로미터까지 치솟았다 떨어지면서 동해의 일본 측 어업전관수역에 떨어졌다. 일본이 특히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정상비행궤도로 따지면 얼추 사거리가 6500~7000킬로미터에 달해 하와이의 미국 태평양 사령부를 타격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안보를 위해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레드 라인(red line)’을 김정은은 겁도 없이 넘어서고 말았다. 이래서 다른 때와는 다른 후과와 심각한 반응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 ‘전쟁 외에는 다른 옵션(option)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은 호언장담하지만 이런 사태는 북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당장 우리 측의 대응도 날카로워졌다. 당연하지만 문 대통령이 크게 실망하고 화가 났다. 이래서는 절대로 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 없다. 그것을 웅변이라도 하듯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들이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통한 무력시위가 이루어졌다. 역대 정부는 이런 때 뒷북치는 항의성 성명을 발표하는 것 말고는 본질에서 항상 물렁물렁하게 대응해왔다. 아마 북은 문재인 정부의 이런 단호하고 신속한 대응에 내심 많이 놀랐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반응은 그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북이 UN이 금지한 ICBM을 발사했는데도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반대는 밋밋했다. 뚝 부러진 반대인지, 묵시적인 응원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다. 북이 ICBM을 실험한 마당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북의 바로 그 같은 도발 책동 때문에 배치가 불가피한 한미 동맹 차원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한다는 묵은 소리를 새삼스럽게 되뇌었다. 그와 중국은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북의 핵 무장 기도가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임에도 그는 이렇게 항상 우리에게는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이고 북의 핵 개발과 도발에는 관용적이다. 이로 미루어 중국은 북한이 핵무장을 한다 해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그들에게 해로울 것이 없으며 도리어 북이 사라지는 남쪽 중심의 통일한국이나 한미동맹의 세력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보다는 더 득(得)이라는 판단을 가슴 속에 숨겨놓았다고 할 수 있다. 국제관계는 이렇게나 냉엄하다. 지나친 기우나 부정적 생각도 불식돼야 마땅하지만 일방적인 낙관이나 혹여 짝사랑과 같은 낭만이 외교 행위에 끼이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경계해야 한다.

북의 잔명(殘命), 김정은 정권의 잔명이 그리 길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잔명이라도 유지해보고자 하는 정권 안보 차원에서 저들은 재앙으로 가는 다리에서 되돌아오지 못한다. 저런 저들을 상대할 때 운명적으로 저들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우리가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경험을 아주 비켜가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의욕을 너무 앞세우면 안 된다. 시행착오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런 북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우리의 운명인가. 그렇다면 과연 언제까지일까.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으는 데 하나여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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