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쓰이는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예컨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가난했던 중국과 현 시진핑(習近平) 치하의 중국의 차이가 빚어내는 감정이 즉 격세지감이다. 각각 딴 세상이다. 마오는 중국의 연안을 마치 자신들의 영해처럼 드나드는 미국의 잠수함과 정찰선 군함들 때문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래서 전해지기를 그는 항상 ‘잠 잘 때 머리맡이 어지럽다’고 했다 한다. 모르긴 몰라도 군사력이 강성한 현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는 마오 시절처럼 잠 잘 때 머리맡이 어지러울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떤 국가이든지 국력이 신장하면 우선적으로 중점적으로 손을 대는 일이 군사력 강화다. 가난과 불평등에 지친 국민들은 국력의 신장으로 얻어진 경제적 부를 민생과 국민 복지에 우선 투입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이런 개인들의 요청이 국가 경영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경제적 굴기(崛起)를 이루어오는 과정에서 국가적 부가 태산처럼 쌓인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 그 같은 국가적 부를 펑펑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부어 잠 잘 때 머리맡이 어지러운 ‘안보 불안’을 먼저 해소했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 증강을 위한 국가적 투자는 지금도 매년 막대한 규모로서 계속된다. 아마 그것의 중단은 적어도 미국을 충분히 견제하고 유사시 효과적으로 격퇴할 만한 수준이 돼야 현실화 될지 모른다. 하지만 혹여 모르긴 모르지만 시진핑이 말한 중국몽(中國夢)의 완성은 경제적 패권(覇權)의 확보와 동시에 세계 최고의 군사 강국이 되어 군사패권까지 장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에 있어서도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을 떨게 하는 수준은 아니어도 미국이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수준은 넘어선 것만은 틀림없다.

첨단 해군력이 아니라면 바다 밑을 누가 육안으로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랴만은 조용하고 기민하기로 소문난 미국 원자력 잠수함도 지금은 중국 연안 가까이 맘대로 침투해 휘젓고 다니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제부터 그런 일이 어려워졌는지 정확히 짚어 말할 수는 없어도 예전의 중국 바다는 미국의 첨단 잠수함에겐 잠행하기 두려운 적국의 바다, 중국의 바다가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항공모함 역시도 지금은 중국의 연안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져 작전해야만 하는 시절이 오고 말았다. 중국에게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원거리 육상에서 타격할 수 있는 비대칭 항모킬러 미사일 둥펑(東風)-21c 등과 같은 효과적인 정밀 무기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독립 움직임에 속을 태우는 중국이 가끔 대만과의 사이에 조성되곤 하는 위기 시에 가장 두려워하던 무기가 가공할 전력을 갖춘 미국의 항모전단이었다. 미국은 중국과 대만 양안(兩岸)에 위기가 감돌 때 거침없이 항모전단을 발진시켜 현장에 보냈다. 눈치코치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너무나 무모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항모 킬러 미사일의 레이더가 항모 전단의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단 발사되면 사거리 안에서는 방어무기가 있음에도 피격될 우려가 크다. 유치한 수준의 것이지만 그들에게도 항모가 있다. 그것을 앞세워 가끔 미국과 일본의 방어선을 뚫고 태평양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들의 군사적 움직임이 자못 공세적이다. 그만큼 막강해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마오 시절의 안보 불안은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던 때의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되고 말았다. 참으로 급속한 군사적 굴기를 그들은 경제적 굴기에 바탕을 두어 이루어내었다. 이는 미국에게는 물론 주변국 모두에 엄청난 도전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북의 핵미사일에 맞서자고 주권적으로 배치를 서두른 우리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몽니를 부리는 그들의 의도에 우리는 일말(一抹)의 의구심이라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한 간섭은 내정간섭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렇다면 그들의 궁극의 야심은 우리에게 씌워진 미국의 안보 우산을 밀어내고 장차 그들의 패권적 우산 그늘에 우리를 묶어 두려는 것이 아닐까. 과장된 의심일까. 과장된 것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렇지만 적어도 저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격적인 행동과 심술궂은 언사(言辭)는 어느 모로 봐도 한미동맹보다 그들이 우리에게 더 이롭고 안전할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초미(焦眉)의 세계적 현안인 북핵(核) 문제를 두고서도 우리와 북을 놓고 뱃속이 빤히 보이는 이중 플레이(play)를 벌이는 것을 볼 때 더 더욱 저들에게 신뢰감을 부여하기 어렵다. 물론 무작정 동맹의 등 뒤에 몸을 숨긴다고 안전할 수만은 없다. 동맹과 집단안보의 추구는 세계적으로 불가피한 추세이지만 우리는 독자적인 생존 역량에 있어서도 턱없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그렇기에 동맹이나 집단안보를 추구함과 동시에 만일의 경우 독자적 자주적 자위(自衛)가 가능한 자구책(自救策)과 안보역량을 충분히 배양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미사일이 미사일을 맞혀 떨어뜨리는 시대다. 발사대를 떠난 미사일은 이내 허공으로 멀어져 보이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전자의 눈 레이더로 탐색해 요격미사일(antimissile)을 쏘아 명중시켜 떨어뜨린다. 평지에서 총알이 총알을 맞히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다. 첨단 과학 기술은 국방 분야에서부터 적용된다. 한참 후에서야 민수용으로 호환(互換)된다. 각국은 평화를 말하면서도 내밀하게는 이런 무기 기술 개발의 각축에서 결코 밀리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 전 제주도에서 쏘아도 북한 땅 어디라도 닿을 수 있는 명중도 높은 미사일 현무2-C를 시험 발사해 성공했다. 북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응답이지만 정부의 이런 응수에 국민이 얼마나 안도하는지 아는가. 주한 미군이 군산 상공에서 쏘아 김정은의 집무실 창문을 명중시킬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재즘(JASSM)을 군산비행장에 배치해 F16비행기에서 발사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러하다.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남들이 총알로 총알을 맞히면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자구책이며 자위역량이다. 그러고서 평화를 말해야 그 말에 힘이 실린다. 이런 일에서는 나라의 길 개인의 길이 따로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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