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저항했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의 장례가 서둘러 치러졌다. 덩치가 공룡만한 중국이 일개 작은 개인인 그의 화장을 재촉해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은 분명히 시선을 끌 만한 부조화였다. 류샤오보의 육신을 태운 한줌의 재는 그의 미망인 류샤(劉霞)에 의해 랴오닝성(省) 다롄시 앞바다에 뿌려졌다. 가족과 일가친척 친구 지인들로 말하면 그와의 영원한 이별이 채 준비도 되지 않은 타계 이틀 만이었다. 수장(水葬)이었다. 그들은 해장(海葬)이라 했다. 저것이나 이것이나 뜻이나 본질이 다를 것은 없다. 

이렇게 중국의 독재 유일 정당 공산당 정부는 내켜하지 않는 가족을 압박해 굳이 류샤오보 육신의 화장을 고집했다. 동시에 재가 된 육신은 반드시 수장해야 할 것임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압박했음이 알려졌다.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음에도 장례가 늦어지면 소문이 번져 흩어진 구름이 모이듯 저항의 뜻을 공유한 군중이 운집(雲集)해 혹여 소요를 일으킬 것을 그들은 두려워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그들이 무참히 무력 진압하고만 1989년 5월의 천안문광장 민주화시위 사태로 입은 정신적 외상(外傷), 트라우마(trauma)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굳이 수장을 택한 것도 그런 트라우마가 작용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땅에 매장할 경우 류샤오보의 묘역이 자칫 민주화 운동의 ‘성지화(聖地化)’ 할 우려가 있다고 그들은 판단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래서 류샤오보의 장례는 철저히 유족의 의사가 배제된 중국 공산당 정부에 의해 통제된 ‘정치장례(政治葬禮)’였다. 중국의 일당 독재 정부는 그 같은 ‘정치장례’를 강압할 수밖에 없었고 유족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짐작컨대 피차가 서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지 않았을까. 류샤오보는 민주화와 반체제 운동의 상징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는 그의 죽음이 몰고 올지도 모를 민주화 및 반체제 운동의 공감 확산과 전파를 두려워했음직하다. 반면에 그의 가족은 공산당 독재 정부의 의사를 따르지 않을 때의 후환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미망인 류샤는 사진작가이며 화가이고 시인이다. 류샤오보가 감옥에 있을 때 류샤 역시 활동을 감시당하고 통제받았었다. 류샤오보 없는 류샤의 중국 내 삶과 안전에 대해 세계 민주 인권 국가들에서 더욱 걱정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그를 중국에서 바깥 세계로 이주시키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물론 아니다. 

중국은 외부의 어떤 질책에도 꿈적도 않는다. 중국법과 ‘마이 웨이(my way)’만을 외친다. 류샤오보는 2008년 10월 이른바 303인이 참여한 ‘08헌장(零八憲章)’을 주도함으로써 국가전복혐의로 11년 형을 선고 받았었다. 그러니까 그가 유명을 달리한 시점이 너무 안타깝다. ‘죄 값’을 거의 다 치르고 석방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투옥 9년 차였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가 간암 말기로서 잔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구속 상태에서 숨을 거두게 하고 말았다. 미국이나 독일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본인의 소망도 거두어 주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제기된 줄기찬 석방 요청에 대해서도 내정간섭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거부해왔다. 이웃나라 강대국 중국이 이런 나라라는 것이 새삼 놀라울 것은 없지만 우리로서 마음이 안 쓰일 수는 없다. 이것이 중국에 혼자 남겨진 류샤의 운명이 처연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라도 세계가 그를 변함없이 기억해주는 것, 잊지 않는 것, 중국 정부가 세계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알게 하는 것, 이것이 그나마 그를 돕는 유일한 길이 될 것 같다.  

중국은 모순과 부조화의 덩어리다. 이것이 장차 중국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지 특히 우리로서는 결코 시선을 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와 그들은 운명적으로 얽히고설킨 이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가주도의 관치(官治)경제이긴 해도 공산주의 계획경제 노선을 버리고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여 경제 굴기(崛起)를 이루었다. 그것도 유례가 없는 초고속 압축 성장에 성공했다. 이렇게 단기간에 경제부국을 일구었다. 이는 더 말할 것 없이 비상한 관심거리였다. 그렇지만 더 비상하게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의 그 같은 자본주의 경제 운용에 맞추어 경직된 정치체제도 그렇게 유연하게 변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요체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의 존중이지만 정치적인 일당 독재가 인민에게 주문하는 것은 그것의 억제이며 통제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한 것이 없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경제로 부자가 된 나라가 입는 일당 독재 시스템의 옷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그 옷을 입고 있다.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유 민주 시장 경제의 시각에서 볼 때 심각한 모순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국가 경영을 꾸려온 것이 신기하다. 중국의 자본주의는 국가주도의 관치경제로서 기형적인 형태임에도 일견 성공했다. 그들의 자본주의는 원형(原形)으로부터 거리가 멀다. 획일화된 정치적 사고가 경제를 위축시키며 창발성(創發性)을 죽이는 것을 애써 피하려 하는 것이 공산당의 은근한 의도라는 것은 짐작 하지만 이런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 그들의 의도가 언제까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모순과 부조화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서는 미봉책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국가 통제의 끈을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리어 악순환적으로 그것에 대한 의존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 정부가 허겁지겁 강압적으로 치른 류샤오보의 ‘정치장례’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그런 어두운 면을 여실히 불 수 있었다. 류샤오보의 죽음과 수장은 중국내 매체에서 한마디도 다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들의 통제는 ‘류샤오보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중국 안에 많을 정도로 ‘인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 성공하고 류샤오보에 대한 역선전과 부정적인 선동선전에 일단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런 방식이 통할지, 언제까지 변하지 않는 공산당 일당통치가 가능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다. 더구나 이 점에 진정 중국 공산당 정부 자신마저도 어떤 확신을 갖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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