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좀 지켜보다가 될 사람 찍어주면 되지.”

점심시간에 식당 옆자리의 할머니가 대화 중 큰 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다. 일부러 들으려고 귀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필자의 귓가를 때린 음성이다. 유행 따라 투표하면 되는가, 유권자의 한 표, 국민의 참정권을 참말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다. 필자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그 분을 쳐다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그 분이 필자 마음을 읽었을까. 자신이 행사한 표가 사표(死票)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유권자에게는 있다. 밴드웨건, 컨벤션 효과라고 한다. 그러나 부화뇌동(附和雷同) 아닌가. 실패한 정권의 전철을 다시는 되밟아서는 안 될 텐데. 이번에야말로 국민이 진정 마음 기댈 수 있는 유능하고 믿음직한 정부를 선택해야 후회 없을 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지지율 낮은 후보가 토론은 훨씬 더 잘 하네.”

지난주 한국기자협회와 S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를 지켜봤다. 어디까지나 필자와 주위 지인들 사견이지만 첫 주도권 토론에 관한 한 후보 5인 중 지지율 높은 두 사람이 지지율 낮은 세 사람보다 별로 잘 하지 못했다는 데 의견이 일치됐다. 왠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듯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토론회에서 나타난 마이너스 요신을 시급히 개선한 후 다음 토론에 나서야 할 것 같다. 두 후보는 발음과 목소리부터 불명료했고, 시원스럽지 않았다. 상대후보 질문에 당황하거나 반문으로 그친 경우도 많았다. 문 후보는 질문에 즉답을 회피하며 가볍게 ‘하하…’ 하고 웃고 말거나 질문에 관점을 달리해 반문하기 일쑤여서 답변에 신뢰감과 진정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줬다. 안 후보는 목소리 억양에 높낮이가 없어 단조로웠고 표정도 왠지 어둡고 굳어있었다. 높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세를 가를 만큼 획기적인 액션플랜(action plan)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조기개헌+임기단축’ 약속이라든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을 발표하고 가동시키는 것, 서민경제를 살릴 구체적인 성장담론을 내놓는 것 등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정책을 떠나 토론 화법에서는 5인 중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 후보가 각각 개성있게 자신의 생각과 매력포인트를 잘 구현했다는 평이다. 심 후보는 평소 정치적 쟁점이나 정책 과제에 대한 숙지가 비교적 잘 돼 있음을 보여줬다. 순발력과 언어구사 능력도 탁월해 많은 호응을 받은 것 같다. 유 후보도 경제면 경제, 안보면 안보 등 대부분의 질문에 대답이 청산유수였다. 향후 원고나 대본 없는 스탠딩 토론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 같은 느낌을 던져줬다. 홍 후보는 매끄러운 달변가는 아니었으나 ‘보수적자’ ‘스트롱맨'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해야 할 말을 쉽게 단순화해 효율적으로 전파하는 소신파의 인상을 안겨줬다. ‘저는 이미 세탁기에 들어갔다 왔다’는 투박한 발언으로 재미와 웃음을 자아냈고, 시쳇말로 ‘빵 터진’ 시청자도 많았다. 귀를 솔깃하게 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제스처나 위트도 표심공략에 좋은 방법이다.

지지율 낮은 세 후보 지지율이 TV토론 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실시될 스탠딩 자유토론이 변수가 돼 지지율이 요동칠 수도 있다. 전화 여론조사는 문제가 많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여론조사가 엉터리였다. CNN, New York Times, ABC News 등에서 발표한 미국 대선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국내 한 대학교수가 빅데이터 분석으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기고 대통령이 된다고 한 예측이 적중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빅데이터가 훨씬 정확한 조사기준이 됨을 보여준 것이다. 전화 여론조사로는 표본수가 적고 샤이투표층의 숨은 속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대선주자가 승리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속마음까지 파고들어 진정어린 감동을 안겨 줘야 한다는 것을 웅변한다. 아직도 썩 마음에 드는 후보 하나를 선택하지 못했다고 하는 이가 많다. 새 대통령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싹 가시도록 해주는 대선주자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왠지 2%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그만큼 부동층이 많고 유권자마다 기준도 다르니 남은 선거운동 기간이 결코 짧지 않고 과정도 역동적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선거 결과는 국민의 민도(民度)를 반영하고 국가의 미래를 가늠한다. 유권자가 행사한 한 표 한 표로 인해 좋은 정치가 펼쳐질 수도 있고, 질 나쁜 정치가 국민을 옥죌 수도 있다. 제2의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후보들의 리더십, 자질, 정책, 개인·가족 비리의혹은 물론, 집권 후 구체적인 액션플랜까지 세밀히 검증해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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