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새 정부 총리로 에두아르 필리프 르아브르 시장을 최근 지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생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소속이고, 필리프 시장은 중도우파 공화당 소속 핵심 의원이다. 제일감(第一感)엔 ‘사실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좌우 가릴 것 없이 인재를 영입해 표심을 넓게 공략하려는 모양이다. 이로써 마크롱 정부와 공화당의 연정(聯政) 가능성은 물론, 60년간 사회당과 공화당이 주도해온 프랑스 정계의 개편에 물꼬가 트이게 된 것 같다고 한다.

기사를 보며 필자는 프랑스가 역시 혁명의 나라이구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프랑스혁명. 세계정치사에 보기 드문 큰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혁명이 바스티유감옥 습격, 루이 16세 처형, 봉건체제 붕괴 등으로 이어지며 유럽 각국의 시민혁명과 현대적 민주정치 확산에 결정적인 바로미터를 제공한 나라가 프랑스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프랑스 정치는 역동적으로 꿈틀꿈틀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크롱은 대통령으로서는 역대 최연소로 24년 연상의 부인인 60대 할머니와의 순애보로도 화제가 됐다. 한국이 오랜 유교사회 습속에 젖어서 그렇겠지만 그의 결혼스토리, 가정사가 솔직히 좀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우리는 조선조보다 사회가 훨씬 개방적이었다는 삼국시대와 고려 사회가 있었음을 한번쯤 떠올려봐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엔 공산주의자 조봉암 선생을 등용했던 이승만 정부도 생각나고 연정과 협치, ‘반문(文)연합’, 다당제 등의 화두가 끊임없이 제기된 이번 5.9대선도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비록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남았지만 장자방 같은 최측근 ‘이호철·양정철’이 떠나고 호남 출신이나 비문(文)인사가 계속 중용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초기 내각에도 눈길이 간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 후보였던 인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당사자가 불쾌해 할 언론플레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 기용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 영입론 얘기다. 얼마 전까지 대선후보로 경쟁했던 인사라는 점과 후보 간에 이념과 입장이 다른 부분이 많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우선 대통령 후보였는데 입각할 수 있겠느냐는 부분이다. 연정을 한다면 이 같은 고답적인 사고는 과감히 극복해야 한다. 한·일위안부합의 문제를 보자. 문·반 후보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 새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재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반 후보는 유엔사무총장 때 한·일관계 교착의 큰 원인이 된 위안부 문제에 정부 간 합의에 이른 것은 외교적으로 잘 한 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없는가. 유 후보도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늘려 취업난 해소에 노력하겠다는 당시 문 후보 정책과 관련, 공공부문 일자리는 오히려 축소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심 후보는 OECD수준의 복지국가로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문 후보는 지나친 증세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처럼 다른 내용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서로 으르렁거렸던 후보인데 새 정부에 어떻게 참여시키느냐는 견해가 있다. 물과 기름 같은 정치적 스탠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각을 총괄할 동반자를 자신의 정당이 아닌 우파에서 파격적으로 임명한 프랑스의 경우는 무엇인가. 연정이나 협치라는 말이 생긴 것 자체가 정당 및 후보 간에 생각과 이념이 상이하다는 전제가 깔린 것 아니겠는가. 서로 다른 정책은 얼마든지 조율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능력중심으로 널리 등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향후에도 얼마든지 고려해볼만 할 히든카드가 아닐까. 반대파 등용, 이는 그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링컨이나 레이건처럼, 세종대왕이나 당 태종처럼!

정적(政敵)을 중용했고, 반대파의 자택까지 찾아다니며 노예해방을 설득했던 미국 대통령 이 링컨이었다. 주례 라디오 연설 등으로 몸을 낮춘 친절한 자세로 정부정책을 국민에게 설명하며 소통에 노력했던 레이건 대통령도 있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동양에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인물됨과 능력만을 보고 중용해 화합의 정치를 펼친 지도자는 있었다. 철천지 원수같은 황희와 유정현을 기용해 조선사회의 통합을 위해 솔선수범했던 이가 세종대왕이다. 황태자 이건성을 추종했던 위징을 등용해 직언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게 했던 당 태종도 있었다. 이들처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정국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북관계와 경제, 외교 등에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도전과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반도이다. 새 정부의 지혜로운 인재등용과 화합정국운용에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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