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과실연 공동대표 

 

조류독감은 계속되고 있다. 첫 조류독감(2003년 12월 시작)에서는 528만 마리를 묻었다. 세 번째(2008년 4월 시작)에는 1010만 마리, 다섯 번째(2014년 1월 시작)에는 1938만 마리였다. 2016년 10월 28일 시작된 이번 조류독감 감염사태에서 벌써 3000만 마리 이상을 생으로 땅에 묻었다. 그럼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벌써 6번째(H5N1 4종, H5N8, H5N6)다. 비슷한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감염사태가 올 때마다 도살 처분하는 숫자는 급격히 늘어난다.

며칠 전 과실연이 주관한 열린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여러 가지 들었다. 농장주가 의심 증상을 발견했음에도 대응지침에 따르지 않고 늦게 신고했고, 이동하는 차와 사람을 매개로 감염이 퍼지는데 통제하지 못했고, 인력이 모자라 감염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인력이 모자라 살처분도 지연됐고,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이 방역대책을 맡은 경우가 많았다. “총체적 부실이다”는 말로 요약된다.

방역현장에서 인력 부족, 담당자의 전문성 부족, 생매장 현장에서 인력 통제와 소독, 발생농장 사후관리, 분변 수거 차, 달걀 수집 차, 농장 사이를 움직이는 차의 통제, 겨울철 소독제의 효능 문제는 항상 뒤풀이 되는 문제였다. 국가 재난에 버금가는 피해가 생기는데도 시행착오는 반복되고 있다. 2003년 이후 6차례나 각기 다른 바이러스가 철새에 의해 유입되어 방역 경험이 쌓였을 법한데도 해결 기간은 더 늘어나고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는 나라에 둘러싸인 지리적 여건 때문에 유입을 피할 수 없지만 방역 체제를 제대로 갖춘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처음 조류독감 의심 증상을 인지한 농장주는 신고를 꺼린다. 신고했을 때 불이익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고하기 어렵다. 건설 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굴되면 신고해야 하는데, 발굴이 마무리될 때까지 공사가 중단되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조류독감 신고도 그럴 것이다. 처음 신고하는 농장이 손해를 보는 체제에서는 신고를 꺼리고, 다른 사람이 신고할 때까지 눈치를 보면서 기다린다. 감염이 확산된 다음에 발견되고, 그때는 이미 늦었다.

방역을 담당한 사람의 전문성은 어떨까. 조류독감 방역에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중요하다. 조류독감의 예방, 발견, 대응은 전문 영역이다. 전문 영역에 정치적 요소가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전문가 자리를 차지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다른 사태에서 지겹게 봤다. 조류독감에서는 전문가가 역할을 맡았을까?

동식물에 생긴 병이라도 국가 재난에 버금갈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동물과 식물에 관한 질병을 통제 관리할 수 있는 행정조직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식물위생방역청(안)’을 만들고, 청장은 전문직으로 임명하고, 청장이 독립하여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그때 매섭게 책임을 묻자.

조류독감이 누그러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일이 끝나면 또 손을 털겠지. 이번 일이 끝난다고 정말 끝난 것이 아니다. 그냥 손을 털면 사태는 다음에 또 되풀이된다. 이번 사태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짚어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년에 5천만 마리를 땅속에 파묻는 장면을 보지 않으려면.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