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과실연 공동대표 

 

“유사직역과의 전쟁을 선포하겠습니다.” 새로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된 김현 변호사가 당선증을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새로 협회장이 될 사람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는 것은 무슨 일일까. 전쟁을 선포할 대상은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공인중개사, 노무사, 행정사 등 다른 전문가 직역일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주로 변리사 직역을 얘기하는 것 같다.

변리사와 변호사 사이에는 크게 2가지가 걸려있다. 첫째, 변호사에게 주는 변리사 자동자격이다. 전문영역이 다른데, 시험을 넘기도 엄청 힘든데 변호사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변리사 자격을 덤으로 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불합리하다. 2015년 변리사회는 자동자격을 완전히 없애려고 애를 썼지만 국회에서 변호사의 발목잡기에 걸려 ‘시행령에 따라 특허청 연수를 받은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법안이 변질해 국회를 통과했다. 둘째, 특허사건(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의 소송대리권 다툼이다. 현행 변리사법은, ‘변리사는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하여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을 대리하는 것을 업으로 한다(제2조)’고 하고, 여기에 제8조(소송대리인이 될 자격)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변리사법은 ‘특허에 관한 사항’이면 ‘법원’에서 변리사가 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소송의 종류를 묻지 않고, 특허법원이든 지방 법원이든 어느 법원인지를 묻지 않고, 오직 특허에 관한 사항이면 변리사가 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변호사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이에 공조하여 생긴 다툼이 생겼다. 법을 다루는 사람이 법을 무시하여 생긴 일인 것을, 변리사가 변호사 직역을 침범한다고 말머리를 돌렸다.

다른 직역에서는, 생활법률밀접 직역인 법무사에게 변호사가 거들떠보지 않는 소액소송사건 대리를 맡게 하자, 세무 관련 소송은 세무사도 하게 하자, 행정심판은 행정사가 대리하게 하자는 주장이나 법안이 제출돼 있다. 변협은 이런 움직임에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한 것이다.

변리사 등 직역은, 원래 변호사의 직역이었기 때문에 변호사는 당연히 자동 자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 환경이 복잡해지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환경이 바뀐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그렇다면, 변호사 자격이 나오기 전에는 종교인이 재판했으니, 종교인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라고 하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 우리 사회에게 어떤 전문가가 필요한가, 그 전문가는 전문가로서 일을 처리할 자질이 있음이 확인됐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변호사 자격을 시험을 통해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들도 시험으로 자질을 검증하고 자격을 준다. 그 검증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지적하고 고치라고 외쳐라.

변호사는 변리사 등 다른 직역을 법률유사직역이라고 부른다. 이것도 고약하다. 변호사는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것이 변호사의 사명이라 한다. 다른 직역과 전쟁선포, 변호사 사명과 거리가 멀다. 법대로 본질에 맞게 해결해야 한다. 법이 잘못됐나, 사람이 법을 잘못 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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