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대한변리사회장 

 

11월 24일 헌법재판소는 “공문서 작성에 한글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2012헌마854)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국어기본법은 한글을 한국어를 표기하는 고유문자로 규정했고, 한글 맞춤법 등 어문규범을 지켜 공문서를 작성하고 교과서를 편찬하도록 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에 맞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선택하여 받도록 했다. 청구인(학부모와 대학교수, 한자·한문 강사 등 333명)은 이런 조치들이 한자 문화를 누리고 교육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며 2012년 10월에 헌법소원을 냈다고 한다. 한글을 생각한다.

한글은 쉽다. 웬만한 외국인도 몇 시간 공부하면 읽고 쓸 수 있다 할 만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말뜻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가 어디 있겠는가. 너무 쉬워서 탈인가 보다. 

언어는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수단이다. 글자 자체를 예술로 다루는 사람은 제외하고, 언어는 목적이 아니다. 글로써 담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릇이 다루기 쉽고 튼튼하고 편하고 커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것을 많이 담을 수 있다.

한글은 크다. 한글로 온갖 외국어를 원음 가깝게 적을 수 있다. 지금은 창제 당시에 있는 몇 기호를 쓰지 않아 일부 제약이 있지만, 한글은 가장 다양한 소리를 표시할 수 있는 글자다. 그래서 자기 글자가 없는 민족의 말을 기록하는 글자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선진국 가까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한글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지식과 정보는 경제력과 국력에 연관된다. 한글은 지식과 정보를 얻고 쌓는 중요한 매개체요 수단이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지식과 정보를 쌓아야 하는데,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조선 시대 한자를 공식어로 썼기에 일부 계층만 지식을 가졌다. 나라가 가질 수 있는 전체 지식과 정보량은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지식축적에 일반 백성의 역량을 모을 여지가 없었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철골구조로 에펠탑을 건설할 때 조선에는 마차가 다니고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조선 시대에 한글을 공식어로 썼다면 구한말 굴욕스러운 역사를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거리에 나가보면 외국어 간판이 많이 보인다. 외국어로 적어야 손님을 더 끌 수 있을 거란 생각이겠지만, 국어기본법 정신에 맞지 않고, 옥외 광고물법에도 어긋난다. 법은 간판에 한글을 쓰게 한다. 법을 떠나, 실제 간판을 단 효과도 좋지 않을 것 같다. 간판은 ‘그 가게나 파는 상품’을 알려야 하는데, 외국어로 적으면 손님이 알지 못해 찾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글을 쓴 간판은 당연하다 싶다.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우리 글자 쓰자는데, 그것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이상했다. 국어기본법은, 필요할 때에는 외국어를 괄호 안에 쓸 수 있게 허용한다. 각자 한자를 배우려는 사람을 못하게 막지 않는다.

우리는 지식정보시대에서 쓰는 기기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했다. 다가오는 4차 산업시대에도 한글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한글에 풀어야 할 숙제도 여러 가지 있다. 지금은 한글을 갈고 닦는 데 힘을 쏟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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