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웃고 떠들 때 진작 알아봤다.” 무어 그리 즐거운 일일까. 춤추고 박수칠 일이라도 생겼을까. 12일 광화문 시국집회를 지켜본 한 지인이 필자에게 말했다. 굴러들어온 호박처럼 대권을 거저먹게 됐다고 김칫국 마시며 좋아하는 표정이라고 꼬집은 말이다. 무슨 잔치판에 초대된 듯 함박웃음과 함께 야당 정치인들이 집회에 얼굴을 드밀었다.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했다가 이제는 조건 없는 퇴진이 당론이란다. 대표가 단독 영수회담을 한다고 했다가 14시간 만에 철회한다. 갈팡질팡하는 민주당이다. 경박한 언행만보면 수권정당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통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문제이다.

민심은 퇴진론 쪽으로 점차 기운다. 미련 없이 내려놓고 물러나라고 직언해줄 인사가 곁에 그리 없는가. 바야흐로 헌정중단 위기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외교도, 무역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제는 심리전이다. 가뜩이나 허리끈 졸라매고 힘겹게 버텨온 경기가 더욱 악화일로다. 정치 불안에 소비심리가 유례없이 얼어붙었다. 자영업자들은 손님 뚝 떨어진 가게를 휑하니 지키며 큰일 났다고 아우성인데 안갯속 대치정국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탄핵정국은 불가피한가. <탄핵안 발의> → <의결> → <180일내 헌법재판소 결정> → <60일내 대통령 선거>까지 무려 여덟 달가량 걸린다. 그동안 경제며 안보며 외교는 어찌되는가. 8개월간 정국혼란과 국론분열 속에 누가 국정운영시스템을 지휘하는가. 헌법상으로는 지금의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돼 있는데 분노한 촛불민심을 고려하면 마뜩찮다. 탄핵추진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자. 첫째는 헌법 제71조에 따른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다. 대통령은 2선에 물러나 앉고 헌법대로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아 질서 있게 수습해나가는 방안이다.

이 때 특별검사의 수사와 국정조사가 실시돼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병행되도록 한다. 대통령 하야는 국정공백과 카오스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 문재인·안철수 투톱 경쟁으로 서둘러 차기대권을 차지하려는 당리당략에 따른 것이라는 역풍도 만만찮을 것이다. 둘째는 대통령 개헌연계 퇴진론이다. 분권형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를 자연스레 단축시키며 대선을 치러내자는 것이다. 소수의 횡포를 막기 쉽지 않은 5년 단임제를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고치자는 개헌이다.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 퇴진시키는 동시에 새 정치체제로 7공화국을 열어나가자는 것이다. 누구라도 ‘대통령병(病)’에 눈멀어 개헌을 막으면 안 된다. 부디 여야가 지혜를 모으고 대승적인 정치력을 발휘해 해법을 찾아야 할 텐데.

‘김병준, 김종인, 손학규…’ 그간 거론돼온 비상시국 대통령권한대행 후보군이다. 공교롭게도 다 개헌론자이다. 솔직하자. 누가 뭐래도 썩 괜찮은 인사들이다. 우선 김병준 총리내정자 카드는 버리기 아깝다. 그로서는 한때 영입 제의한 당이 기회주의자라고 겨냥하고 내정 전 청와대가 국회와 사전조율해주지 않은 것은 심히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서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신뢰를 받으며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냈고, 정·관·재계 및 언론계 등에서 성장담론 등으로 이미 소신과 능력, 덕망을 두루 인정받는 인물이다. 책임총리 수락에 공명심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회견 눈물과 ‘냉장고론’에서 보듯 우국충정과 사명감도 남달라 아쉽다.

경제민주화 지론의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시대정신에 밝은 눈과 국정감각, 배짱을 함께 갖춘 중립형 인사다. 트럼프시대의 도래로 국제사회가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왠지 딸깍발이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그에게 한국이 처한 경제위기를 돌파할 지략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강진일기’의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은 정계은퇴와 복귀를 거치며 만만찮은 내공을 쌓았다.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균형감이 있고, 비교적 공평무사하게 직무를 수행할 인사로 꼽힌다. 경기도지사와 보건복지부 장관 때는 왕성한 활동력으로 A급 행정능력을 보여줬다. 현재 당적에서 자유롭다. 1년가량 국가의 명운과 국민 삶의 질을 책임질 만하다.

하지만 한방에 훅 떠오를 수도 있는 대권잠룡이라는 점이 변수다. 야권의 집중견제를 받고 있어 대권도전 부분이 정리돼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차기대통령에 입후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먼저 밝히고 거국내각을 지휘할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박 대통령은 임기가 아직 1년 4개월이나 남은 국정최고책임자요, 군통수권자이다. 스스로 하야할 리 만무하다. 거국내각협상은 쉽지 않아 국회투표로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웅은 난세에 배출된다고 했다. 국가적으로 힘든 시기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셋 중 누구를 맡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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