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하늘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싫어하는 줄 아는가. 하늘은 정의를 바라고 불의를 싫어하노라. 그러므로 지도자는 세상 사람들을 이끌되 정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天何欲何惡 天欲義而惡不義, 然則率天下之百姓, 以從事於義).”

‘나를 돌보듯 남을 돌보라’는 겸애설을 설파한 묵자의 말이다. 묵자는 하늘의 뜻과 섭리를 존중하는 정치를 의정(義政), 거스르는 정치를 역정(力政)이라고 정의한다. 의정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협하거나 속이지 않아 위로는 하늘에 이롭고, 가운데로는 신령들에게 이로우며, 아래로는 사람들에게도 이로운 정치다. 역정은 힘의 논리를 앞세워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빼앗는 정치다. 역정이 일시적으로는 이로울지 모르나 결국 하늘의 천벌을 받고 신령들에게 징벌당하며 사람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 묵자는 “이처럼 환히 밝은 날에 죄를 지으면, 장차 어디로 도망칠 것인가(晏日焉而得罪, 將惡避逃之)”라고도 했다. 어둠 속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약자들에게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을 안겨준 사상가였다. 중국에서는 군왕들이 가뭄이 들거나 백성의 삶이 곤궁해지면 임금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겼다.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 제사를 지내며 하늘에 복을 빌었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번영과 생존을 누리고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3.15부정선거에 분노한 학생들의 외침이 4.19혁명으로 표출되자 이 대통령은 하야했다.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185명이나 됐지만, 하야일인 1960년 4월 26일은 4.19학생의거일로부터 불과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프란체스카 여사 등이 귀엣말로 이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했고,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여기서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자는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이 담긴 말이라고 한다. 혹자는 이 대통령이 대범한 마음으로 천명(天命)을 생각하며 주권재민의 원칙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평가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실기(失機)한 것이 아닐까. 박 대통령에게는 촛불민심을, 천리를 거스르지 말라고 귀띔해줄 측근도 없는가. 왜 찔끔찔끔 세 차례나 담화를 내놓으며 질질 끄는가. 이왕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단 한 번에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이제 4월 퇴진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지금은 하야와 탄핵이 다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일반 민심인 듯하다. 이유는 담화에서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또한 ‘세월호 7시간’과 국정농단 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패배로 끝난 4.13총선 결과부터 분노한 민초들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위정자가 민심을 거스르면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말없이 참고 참다 도를 넘으면 폭발해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촛불민심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사임 후, 탄핵 후가 국가적으로 잘 준비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니까. 난세는 인물을 낳는다고 했던가. 기존 대권주자군의 문재인 안철수 반기문씨 등이 들으면 억울한 일이 될까. 이재명 성남시장이 뜨고 있다. 이해득실 따지기에 급급한 기존의 정치권에 식상한 사람들은 이재명을 집중거론한다. 사실은 그도 또 한 명의 계산에 밝은 사람일 것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먼저, 적확하게 판세를 읽어냈을 뿐이다. 일찍부터 ‘박 대통령 구속! 탄핵!’을 일관되게 외쳐온 그는 사이다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화끈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이 박정희 향수를 이용해 집권하려고 만든 생각없는 인형”이라거나 “무덤을 파자. 우리 손으로 잡아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벌해체와 같은 과감한 경제민주화도 주장에 들어있다. 그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비결은 국민의 가려운 데를 속 시원히 긁어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대권잠룡 중에 이와 정반대 편에서 비교적 신중하게 처신하며 다수 중·노년층의 입에 조용히 회자되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황교안 국무총리와 얼마 전 정계복귀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다. 불안하지 않고 신뢰가 가는 인물, 왠지 무게중심을 갖춘 신사스타일이라서 선호한다고들 한다. 혼돈의 한국호(號)를 정의롭게 이끌 새 선장을 기대한다. 앞으로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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