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모병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지난 5일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두관 의원이 문제제기를 한 뒤 곳곳에서 갑론을박이다. 모병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국가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수면아래 묻혀 있지 않고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될 만한 중요한 문제들이 변변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상명하달식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이름도 생소한 ‘사드’가 대표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병제 지지자다. 내 나름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고 나면 일어나는 군 안전사고를 근절할 수 있고 군내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본다. 둘째는 입대비리, 배치비리, 군납비리, 방산비리를 포함한 군내 각종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점이다. 셋째,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자식들을 부른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마땅하다는 점이다. 넷째, 우리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에게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예산 논쟁도 있지만 이 문제는 여기선 논외로 한다. 

최근에도 뉴스를 보면 군 안전사고, 폭행과 가혹행위, 성폭력, 인권침해는 수시로 일어난다. 단언컨대 뉴스에 난 건 빙산의 일각이다. 2년여 전에 당사자의 증언과 한 인권단체의 처절한 노력으로 ‘윤일병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때만 해도 앞으로 군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부모들도 있었을 것이다. 군이 나서서 개혁을 한다고 하고 정치권이 팔을 걷어붙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사고는 계속 터지고 병사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현실은 변화가 없다. 오죽했으면 아직도 시중에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이 떠돌겠는가? 최근 윤일병의 가해자였던 이병장이 징역 40년을 확정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실질적으로 군이 변했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도 병사들이 제때 진단을 제대로 받지 못해 목숨이 스러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군의관이 의료사고를 내도 공상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뉴스는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 모두의 가슴을 내려앉게 만든다. 군에 갈 아들을 둔 필자는 늘 걱정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군에 가서 관심병사가 되면 어떡하나, 안전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가혹행위를 당해서 인생을 비관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끝이 없다.  

징병을 멈추고 모병을 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뀐다면 병사들의 인권을 짓밟고 군인의 안전을 지금처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지금처럼 병사를 대했다가는 모병이 안될 것이다. 군은 자신의 조직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변신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군대에 간 멀쩡한 청년이 이른바 관심병사(도움-배려병사)가 되어 따돌림을 당하거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고통 속에 헤매는 병사가 된 모습을 상상해 보아라. 군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생겼을 때 군인들을 치료할 수 있는 군 병원은 민간 병원에 비해 의료진이나 시설이 한 참 못 미치고 절차는 까다로운 탓에 목숨을 잃게 됐다는 뉴스는 또 얼마나 많은가!

비리근절을 내세우며 모병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방산비리를 포함한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을 본다면 모병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깨끗한 군대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초저출산국에 속한다. 어떤 사람은 조선족을 ‘수입’해 오면 된다지만 저출산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상식이 됐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에게 군입대 여부를 선택에 맡기는 건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질과 적성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공동체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보장해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믿는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군입대 비리로 인해 재벌가나 권력자 집안의 자녀는 여러 가지 창조적인 방법으로 군을 면제 받거나 안 가도 되게 만들거나 ‘좋은 보직’을 받고 ‘좋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징집 대상 가운데 힘없고 백 없는 사람들의 아들들은 몸이 건강하면 거의 100% 군에 가게 된다. 슬프게도 안전사고 당하고 가혹행위 당하고 인권침해 당할 수 있는 환경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시간아, 어서 가라” “사고 없이 제대 하는 게 소원이다” 하면서 군 생활을 한다. 가혹행위가 근절되고 인권침해 없는 환경에서 본인의 선택에 따라 전문직업인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면 군의 전문성과 사기도 높아지고 그만큼 국민을 위한 군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될 것이다. 

상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환경에서 20만원도 안 되는 대우를 하면서 애지중지 키운 생때같은 자식을 동원하는 시대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집값은 비싸고 전세는 하늘이 낮다하고 솟구치고 자녀 교육비는 낮아질 줄 모르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2년의 사회단절을 경험하고 빈손으로 사회에 내던져지는 젊은 청년들은 막막하기만 하고 억울하기까지 하다. 직업군인제를 도입해서 합당한 대우에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면 없던 애국심도, 애민심도 저절로 생길 것이다. 이게 바로 튼튼한 국토방위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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