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맹자는 공자의 고향 곡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동성 남부 추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자의 핵심사상인 인(仁)을 의(義)로 구체화하여 아성(亞聖)으로 추대됐다. 공자의 시대는 춘추말기였고, 맹자의 시대는 전국초기였다. 춘추시대는 봉건제도가 명맥을 유지했으므로 귀족들이 군주의 권력을 제한했다. 군주는 과두정치제도의 수장에 불과했으므로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는 그리 절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주국의 통치력이 약화되고 지방경제가 발달하자 변화가 발생했다. 제후들은 권력 강화를 위해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직접 국가를 지배하는 관료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어서 제후들끼리의 패권다툼이 격화됐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 처한 맹자는 격렬한 철학을 전개했다.

황인우(黃仁宇)는 공자가 가볍고 유쾌한 느낌을 준다면 맹자는 매사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절박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공자는 신중한 명분론자였고, 맹자는 치열한 혁명가에 가까웠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위기의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춘추시대는 구제도로 사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기존의 가치관을 모두 바꾸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맹자는 애매하고 느슨한 공자의 인으로는 대규모 살육전에 여념이 없는 군주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맹자가 유세할 때는 상앙의 법가사상과 소진, 장의의 합종연횡책과 같은 부국강병책이 횡행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등용돼 각축전의 앞잡이가 됐다.

맹자는 능력의 기준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가 제시한 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국강병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는 군주에게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 맹자 첫 대목은 부국강병을 이익으로 여기는 양혜왕과의 대화이다. 양혜왕은 나름대로 부국강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했다. 중견기업을 재벌로 만들려는 사업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가 물었다.

“선생께서는 저의 회사에 이익이 될 어떤 대책을 가지고 오셨겠지요?”

맹자는 이 중견기업가를 면전에서 나무란다.

“하필이면 만나자마자 이익부터 묻습니까? 사업가는 인과 의부터 말해야 합니다. 사장님이 이익을 앞세우면 임원도 자기의 이익을 도모할 것이고, 이어서 간부와 사원들까지 자기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길 것입니다. 사장을 망하게 하는 것은 임원이고, 임원을 망하게 하는 것은 간부와 사원들이겠지요.”

이익이 목표인 기업에서 이익보다 인과 의를 우선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의 사업영역을 확보한 기업이라면 사회적 이익을 내세우는 것이 당연한 요즈음 맹자의 주장은 전혀 낯설지 않다.

사업가라면 맹자와 같은 컨설턴트를 만나 이러한 충고를 듣고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상사의 흥망이 부하에게 달린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맹자는 이렇게 상대가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명쾌한 논리를 펼쳤다. 공자의 어록이 중심인 논어를 읽으면 선문답처럼 함축적인 대화를 통해 빙그레 웃을 수 있다. 그러나 맹자의 논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단호하다. 맹자의 말을 들은 군주는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맹자는 유세에 성공했을까? 당연히 실패했다. 논리는 정연했지만 일국의 군주를 이렇게 면박해서야 자존심이 상한 군주를 설득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맹자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옳은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맹자는 설득의 기술이 부족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불통이 국정을 어렵게 만든다는 걱정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통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혜로운 사람이 없는 것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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