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조(趙)는 흉노와의 대북전투, 진(秦)과의 의안(宜安)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의안전투는 강진(强秦)이 전국시대 후기에 유일하게 대패한 경우였다. 약자인 조가 강자인 진을 이기기는 엄청나게 어려웠다. 승리의 요인은 지구전으로 전력을 비축했다가 적이 허점을 보이자 일거에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승장 이목(李牧)은 북방을 지키면서 함부로 나가 싸우지 않고 10년 동안 전력을 비축했다. 참언을 믿은 조왕이 여러 차례 질책하다가 파면했지만 이목은 끝까지 지구전에 대한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진군이 수도 한단을 위협하자, 사령관으로 임명된 그는 지구전으로 다시 승리했다. 이목이 수비에 치중하는 동안 진군은 초반에 오버 페이스한 마라토너처럼 점차 지쳐갔다. 끈기에서 이목을 감당하지 못한 진의 환기(桓齮)는 적을 유인하기 위해 비하를 습격했다가 패했다. 의안전투는 이목과 환기의 전략 대결이었다.

먼 길을 원정한 군대는 속전속결이 가장 유리하다. 지구전이 벌어지면 공격자가 불리하다. 염파(廉頗)도 장평(長平)에서 기세등등한 진군을 맞이하여 지구전으로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렸다. 진의 범수(范睢)는 노련한 책략가답게 조의 내부갈등을 이용해 염파를 내쫓고 조괄(趙括)로 대치했다. 끝까지 염파가 전선을 지켰다면 이기지는 못했더라도 45만명이 생매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목은 진군의 편제 개편에 주의했다. 아군도 사령관이 교체됐지만, 진군도 원래 세 갈래로 나눈 부대를 하나로 몰아 환기가 지휘했다. 아군은 패전으로 사령관을 교체했지만 진은 패배하지 않았는데도 사령관을 교체했다. 일선의 지휘관에 대한 문책성 인사임이 분명했다. 환기는 성과를 내려고 결전을 서둘 것이다. 지금까지 진군은 대부분 속전속결로 승리를 얻어냈다. 상황은 흉노와 대치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목은 유리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훈련에 전념했다. 끈질기게 버티면 초조해진 적이 먼저 모험을 시도한다. 과연 환기는 조군을 유인하기 위해 비하(肥下)를 기습했다.

대치가 장기화된 것은 전력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환기는 비하를 기습하기 위해 자신이 친히 나섰고 주력부대를 이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주력부대가 빠지자 전력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목은 비하의 지원요청을 냉정히 거절했다. 전쟁은 마지막의 승자를 가리는 냉정한 게임이다. 진은 국력과 군사력이 강하지만, 엄격한 법률에 따른 성과제일주의 때문에 천하의 인심을 얻지 못했다. 백기(白起)가 장평에서 항복한 조군을 생매장한 것은 그들을 살려두었다가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하의 수비군은 진에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비하를 습격한 환기의 주력은 당장 본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이목은 역으로 진의 본영을 기습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환기가 이목을 유인한 것이 아니라, 이목이 환기의 비하 기습을 유인한 셈이 되고 말았다. 

과연 이목은 버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수비는 아무리 잘해도 비길 수는 있지만 이길 수는 없다. 이목이 숨긴 비장의 카드는 고도의 전투력을 갖춘 기마부대였다. 조는 무령왕(武寧王)이 호복(胡服)을 입고 기사(騎射)를 장려한 이래 상무(尙武)정신을 자랑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조가 강국으로 부상해 진의 통일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목은 기동전에 능한 흉노와 싸우면서 기마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했다. 이 부대가 이목이 준비해둔 반격의 힘이었다. 삽시간에 진의 본진을 짓밟은 조군은 비하를 습격했던 환기의 주력부대가 돌아오자 양익으로 갈라져 적을 아군의 포위망으로 끌어들였다. 뛰어난 기동력이 없었다면 순식간에 대군을 포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조군의 포위망에 갇힌 진군은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하고 말았다. 이목의 승리로 진의 통일사업은 주춤했다. 그러나 통일전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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