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지나침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 지요(智瑤)는 춘추말기 진(晋)의 사경 가운데 하나로 지선자(智宣子) 지신(智申)의 아들로 지백(智伯)이라고 한다. 지씨의 시조는 지장자(智庄子) 순수(荀首)로 진헌공의 탁고중신 순식(荀息)의 손자이자 중군장 순림보(荀林父)의 아우였다. 성공(成公)시대에 순수가 지읍(智邑)을 봉지로 받아 지씨로 독립했다. 지신이 일족과 가신들을 불러 후계자 문제를 상의했다. 지신이 먼저 지요에 대해 물었다. 일족인 지과(知果)는 지요는 지소(知宵)보다 못하다고 반대했다. 지신이 지소는 얼굴이 흉악하다고 반박했다. 지과가 말했다.

“지소는 얼굴이 못났지만, 지요는 마음이 못났습니다. 지요에게는 5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염이 멋지고 몸이 장대합니다. 둘째는 활을 잘 다루고 힘은 수레를 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셋째는 말을 잘 하고 문장이 뛰어납니다. 넷째는 과감한 결단력과 용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기능이 출중하고 기예가 남다릅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현명함은 누구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어진 마음만은 없습니다. 인덕으로 정치를 펼치지는 않고, 이러한 5가지 장점으로 통치를 강행하면 누가 그를 돕겠습니까? 지요가 후계자가 되면 지씨 일족은 반드시 멸문지화를 당할 것입니다.”

지신은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지요를 후계자로 삼았다. 지과는 지씨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예감이 들어 성을 보(輔)로 바꾸고 따로 종묘를 세웠다.

BC 475년, 지요가 진의 집정이 됐다. 이 무렵 중원은 이미 다원화 현상이 시작돼 전국시대를 눈앞에 두었다. 지요는 진이 패주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제(齊), 정(鄭), 위(衛), 중산(中山)을 상대로 전쟁을 펼쳤다. 국세를 떨치자 출공은 지요를 충신으로 여겼다. 지요는 패업을 회복하기 위해 국군의 실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한씨, 위씨, 조씨 등 3가에게 1만호에 해당하는 땅을 공가에 바치라고 강요했다. 한과 위는 복종했지만 조는 거절했다. 지요는 한과 위를 끌어들여 조의 진양을 포위했지만 2년이 지나도 함락하지 못했다. 지요는 분수(汾水)에 제방을 쌓아 강물을 진양성으로 흘려보냈다. 밤사이에 진양은 물바다로 변했다. 조씨의 위기가 임박했다. 지요는 한씨와 위씨를 불러 높은 곳에서 진양을 바라보며 “전에는 물의 힘을 몰랐는데, 한 나라도 망하게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무심코 한 말이지만 듣는 두 사람은 모골이 송연했다. 

위기에 몰린 조씨의 가신 장맹담(張孟談)이 몰래 밤중에 성을 나가 한씨와 위씨를 만났다. 그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을 비유로 조가 망하면 한과 위도 보전하지 못한다고 설득했다. 양가는 조씨와 함께 지씨를 멸하기로 약정했다. 밤중에 한과 위가 제방을 제압하고 물길을 지백의 진영으로 돌렸다. 지요가 놀라서 깨어났을 때는 주위가 물바다였다. 지요는 생포돼 참수형을 받았다. 조씨는 지요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고 술잔을 만들었다. 지씨의 주력부대는 전멸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지씨의 봉읍을 공격하고 일가족을 몰살하자 천하가 놀랐다. 지씨의 땅은 3가가 균등하게 나누었다. 이후에 삼가가 진의 남은 땅을 나누어 가졌다. 이를 ‘삼가분진(三家分晋)’이라고 한다.

예양(豫讓)은 지요의 가신으로 춘추전국시대 4대 자객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죽은 지요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예양은 지백이 죽자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을 남기고 지백의 복수를 위해 3차례나 조양자를 습격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의 충의에 감동한 조양자는 옷을 벗어주며 칼질을 하게 했다. 예양은 조양자의 옷을 3차례 찌르며 자백의 복수를 했다고 외친 후 자결했다. 예양은 죽어서도 지요의 곁에 묻혔다. 지요와 오왕 부차는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다가 허망하게 망한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육가(陸賈)와 유안(劉安)은 지요, 부차, 진시황을 모두 능력을 앞세워 남을 공격하다가 망한 점에서 같다고 평가했다. 은의 주왕이나 항우도 거기에 넣을 수 있다. 권좌로 올라가기까지는 재능이 필수적이지만, 정점에 이르면 오히려 모자라는 척 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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