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문명마다 독특한 전쟁관이 있다. 서구문명은 전쟁문화가 기조였다. 정복을 통한 약탈, 식민지 확장은 고대 그리스 전쟁문화이다. 협소한 생존공간의 압박을 받은 그리스인은 폭력으로 타자의 생존공간을 빼앗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번영은 철학적 지혜와 시, 비극, 조각에서 올림픽 경기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의 전쟁문화를 대표한다. 폭력으로 성취한 그리스인은 폭력으로 더 큰 성취를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미래의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자유라는 관념이 탄생했다. 자유는 쟁취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자유는 동양에서 탄생할 수 없었다. 동양에서는 스파르타식 노역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대 중국의 승리자는 패배한 부족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그들의 저항을 고려해 관대하게 대했다. 상의 유민들에 대한 주무왕의 조치는 스파르타가 전쟁에서 패한 아시아인들을 노예로 만든 것과 달랐다. 자유의 득실이 용이한 환경에서는 자유에 대한 갈망도 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현대의 이상주의자들이 설정한 자유와는 달랐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자유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자유의 의미가 실제로 형성돼온 역사를 보면 이러한 자유는 최대한 자기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최대한 구속해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중적인 함의를 지닌다. Orlando Patterson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적 자유는 민주를 창조했고, 그 결과 자유와 경제가 동시에 번영했다. 그러나 자유가 확장되자 침략의 본질적 근원이 되고 말았다. 노예제도는 자유의 산물이다.”

서양문명은 전쟁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포괄적 자유가 내재되기도 했지만, 서구인들은 전쟁 이외의 가치척도로 전쟁 자체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적의 용감한 정신에 대해 칭송했다. 이들 문명에서는 힘을 숭상한다. 생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통은 호머의 서사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적을 악당으로 취급한 동양적 전통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올림픽도 전쟁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올림픽 정신을 평화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결과였다. 올림픽의 종목은 냉병기시대의 전투능력과 유관하다. 전쟁을 일상적으로 생각한 그리스인들은 평화시대에도 전투력 강화를 위한 훈련이 중요했다.

동양은 달랐다. 공자는 윤리를 전쟁에 대한 가치평가의 척도로 삼았다. 맹자는 ‘인자무적(仁者無敵)’ ‘이지인벌지불인(以至仁伐至不仁)’으로 윤리적 전쟁관을 규정했다. 전쟁은 윤리도덕의 완성을 위한 수단이었다. 물론 동양의 전쟁관은 편파적이다. 윤리 이외의 모든 가치관을 배제하면 역사가는 윤리라는 함정에 빠져 전쟁을 전방위적으로 관찰하지 못한다. 동서양의 전쟁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사람들은 곤혹스러워하다가 서양의 전통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폭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법칙이 공인되면 문명의 몰락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아편전쟁에서 동양의 윤리원칙은 서양의 폭력법칙에 무너졌다. 정의가 불의를 이긴 전쟁사는 드물다. 미래세계는 서양의 전쟁관이 초래한 결함을 발견하고, 동양의 전쟁관이 유치하다는 점도 발견해야 한다.

전쟁에 대한 미학도 무시할 수 없다. 고금의 역사와 예술작품에는 전쟁미학이 있다. 이러한 미학관은 전쟁이 인류의 본질적인 역량에 대한 고도의 표현형식이라고 설명한다. 확실히 인류가 깊이 자아를 관조하려면 고난, 슬픔, 재난, 사망이라는 고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역량과 지혜가 응축된 총화를 축적한다. 전쟁으로 인해 행복과 고통, 희망과 절망, 창조와 파괴, 정의와 사악, 사망과 재생이 교차하며 인류는 지옥과 같은 체험을 공유한다. 생존본능과 사망본능이 서로 교차하면서 인류는 본질적 역량의 모든 것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최고수준의 미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전사자의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고, 흘린 피가 강을 이루는 참혹한 전쟁터가 대상화된 배경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전쟁으로 격발된 자기의 거대한 능력과 놀라움, 숭배와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전쟁에 대한 인류의 미학이다. 긴장이 계속되자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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