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탁영완(1948~ )

 

오늘은 그대가 내 가슴에 퍼질러 앉아

대금 산조를 부네

내 속 미천한 아낙을 불러 세워

때 묻은 수건에 불어터진 발 그대로

종일 귀 기울이게 하네

그대 이마에 월계수인 듯 걸려 있는

고음의 아리아는 잠시 내려두고

흰 목에 걸어주던 정결한 첼로 은실 가닥도

하늘로 되돌려 보내 겨울비로 흐르게 하네

 

아, 오늘은 그대가

맨땅이듯 내 가슴에 퍼질러 앉아 대금산조나 부네

 

[시평]

올 겨울은 따뜻하여 난동(暖冬)인 듯하다가도,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찾아와 사람들을 잔뜩 움츠리게 하고. 그런가 하면 함박눈이 펄펄 내리다가는 이내 비가 되어 추적이기도 하고, 참으로 알 수 없는 겨울이었다. 이러한 겨울의 모습 모두가 기후의 이상변화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한겨울 추적이며 내리는 겨울비는 여름비 마냥 시원하지도, 또 봄비 마냥 아장거리지도, 가을비 마냥 스산하지도 않다. 겨울비는 마치 끊일 듯 끊일 듯 끊이지 않는, 애잔함으로 하루 종일 이어지는, 퍼질러 앉아 불고 있는 대금 산조와도 같은 비, 그런 비 아닌가.

겨울비가 내리는 한나절, 대금 산조 마냥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그 빗소리, 하루 종일 쓸쓸히 마음의 귀 기울이게 하네. 그리하여 어느덧 까맣게 잊어버린 그리움 하나 하루 종일 추적이며 우리의 가슴을 적시며 찾아들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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