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에서 수천명이 모인 콘서트 직전 무차별 총격과 방화 테러가 벌어지면서 130여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든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5기 대관식에 찬물을 끼얹은 20년만 최악의 테러에 모스크바와 러시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푸틴 대통령은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이번 사건은 어린이와 교사들을 인질로 삼은 체첸 반군과 러시아군의 충돌로 3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온 2004년 베슬란 초등학교 인질사건 이후 러시아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로 꼽히게 됐다.

러시아가 발칵 뒤집힌 직후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자신들이 이번 공격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IS 선전매체 아마크 통신을 통해 “(IS 전투원들이) 수백명을 죽이거나 살해하고 해당 장소를 크게 파괴한 뒤 무사히 기지로 철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아직 이번 사건의 배후를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공격이 실제로 IS의 소행이라는 걸 확인하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미국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사건을 ‘극악무도하고 비겁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규탄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워 온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각국도 테러를 비난하면서 러시아 국민에게 조의를 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끔찍한 총격의 희생자들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외교부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혐오스러운(odious)’ 공격이 자행됐다고 규탄했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성명을 통해 “모스크바의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건 경악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옛 소련의 일부였던 국가들과 중동 각국도 잇따라 테러를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테러를 ‘계획된 조직적인 대량 학살’로 규정, “이 범죄를 저지른 모든 가해자와 조직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했다. 무차별 테러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조치를 예고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배후설까지 등장해 이번 테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돌발 변수로 작용한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 확산 속에 러시아의 무차별 테러로 참사가 발생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국제사회가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무차별 테러를 우려하는 것은 보복과 맞보복의 악순환으로 인도적 참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안보 위협 속에 정치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빈번한 우리의 상황에서 이번 러시아의 무차별 테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