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친했던 어린 시절… 농구 통해 실패·좌절도 이겨내
보육원·다문화 어린이 팀 결성 “농구로 소외계층 위해 일”
입에서 습관처럼 나온 “덕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
이루고 싶은 소원은 “어린이 농구단이 오바마 만나는 것”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앞의 한 중학교 농구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 소장은 “농구를 통해 다문화 인식에 대한 개선과 인재 양성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앞의 한 중학교 농구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 소장은 “농구를 통해 다문화 인식에 대한 개선과 인재 양성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땅! 땅! 땅!”

서울 용산구 용산체육문화센터 체육관에서 운동복 차림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힘차게 드리블을 하고 있었다. 농구를 하러 모인 선수단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실력이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힘든 내색보단 밝은 빛이 가득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경 결성된 ‘맥파이스 어머니 농구단’이었다. 다른 구단과 달리 이 농구단이 특별했던 점은 선수들 사이에서 중국어와 영어가 많이 들렸다는 점이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농구를 하는 모습은 모인 경위를 궁금하게 했다.

그때 이들 사이에서 즐겁게 농구를 가르치는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을 볼 수 있었다.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맥파이스 어머니 농구단’ 선수들이 서울 용산문화체육센터에서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맥파이스 어머니 농구단’ 선수들이 서울 용산문화체육센터에서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농구’

천 소장은 농구 훈련 이후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한국농구발전연구소 사무실로 안내했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반지하 사무실이라 직접 마중 나오지 않으면 찾기도 힘든 곳이었지만 사무실 안에는 농구단의 상패와 사진들, 농구단의 웃는 모습들과 신문 스크랩 등 그간 천 소장이 일해 온 흔적들이 빼곡하게 장식돼 있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공과 친하게 지냈다던 천 소장은 배재고와 단국대에서 농구선수 생활을 했었다. 비록 실업 팀에는 가지 못했지만 대한농구협회 총무이사와 홍보이사로 농구와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사업 실패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아픔을 겪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천 소장은 “나는 사업 안 한다. 진짜 3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방황한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농구’였다. 그는 “학창 시절 열심히 했던 농구로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이후 천 소장은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라는 직을 달고 새롭게 출발했다.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한국농구발전연구소는 설립 이후 아동복지시설 농구단인 ‘드림팀’과 다문화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를 이끌어가며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사무실에 트로피와 상장들이 진열돼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사무실에 트로피와 상장들이 진열돼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포기하지 않은 ‘미운오리새끼’

다만 농구단 운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천 소장은 “그때 정말 힘들게 농구단을 운영했었다”며 “오후 5시 반에 시설에서는 저녁을 먹었는데 연습을 하고 가면 저녁식사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마침 서오릉의 한 보리밥집에서 아이들 저녁식사를 후원 해줘서 너무나 감사했다”며 “마음의 짐을 던 뒤로는 아이들이 더 열심히 훈련했고 결국 드림팀이 전국대회에서 성적을 내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고 웃음을 짓기도 했다. 천 소장은 “그 식당이 아이들을 후원한 뒤부터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한켠에서 내가 과일 장사도 하고 주차관리도 도와주면서 드림팀 후원비를 충원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천 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지인에게 다문화 어린이들의 힘든 사정을 듣고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가장 먼저 구로와 금천구쪽 교육청을 찾아갔다. 하지만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 이태원의 보광초등학교에 다문화 학생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2011년 무작정 찾아가 농구 교실을 열고 싶다고 제안했다. 천 소장은 “당시 교감 선생님이 다문화 학생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 시작해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2012년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의 창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역시 농구단 운영이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중 여행사 하나투어가 구원 투수로 천 소장에게 지원을 나섰고 이후 몇 년간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앞의 한 중학교 농구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앞의 한 중학교 농구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그러나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2019년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 위기로 후원사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체육관을 못 쓰면서 농구단이 중지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현재 진행 중인 ‘어글리더클링(UglyDuckling)’ 프로젝트다. 농구단의 아이들을 보며 ‘미운오리새끼’가 떠올랐다는 천 소장은 다문화가정이 한국사회에 잘못된 기대와 편견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국민들이 크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생김새는 달라도 정말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며 “이들이 단순 공부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맘껏 펼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 소장은 농구를 통해 다문화에 대한 인식개선과 미래 인재 양성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행복한 다문화 가정이 인식개선의 출발’이라는 모토로 어글리더클링 시즌 1, 2를 이어오고 있다. 또 글로벌 프렌즈의 구단주였던 하나투어도 코로나19의 어려움을 겪고 다시금 지원을 약속해줬다.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맥파이스 어머니 농구단’ 이 서울 용산문화체육센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맥파이스 어머니 농구단’ 이 서울 용산문화체육센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19.

◆“많은 사람들 덕분… 농구와 함께 교육도”

계속해서 농구단을 운영하고 어린이 농구단원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지만 경제적인 이익은 거의 없었다. 스포츠가 상업화가 된 지 오래된 지금 이렇게 일하는 건 쉽지 않았을 터이다. 이에 대해 천 소장은 “보람”과 “덕분에”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는 실제 이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었다.

다만 그의 입에선 “아내 덕분에”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사업 실패 후 농구를 통한 봉사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자신을 보고 아내가 가족 생계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서줬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 돈을 가져다주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있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천 소장이 농구를 통해 이런 다양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더불어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농구인들의 후원과 함께 각계각층에서 그를 도왔다.

천 소장은 농구단을 운영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단순히 운동만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농구를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갖고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인성도 익히도록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한정적이고,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도 열악한 실정이다.

스포츠를 통한 다문화 인식 개선과 미래인재 양성에 대한 천 소장의 도전은 눈에 띄는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다문화 농구단과 어머니 농구단은 스포츠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화합하는 장을 만드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해외 여러 나라에선 일찍이 스포츠를 통한 이주민 포용을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지원하고 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앞의 한 중학교 농구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천지일보 2024.03.1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천수길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농구발전연구소 앞의 한 중학교 농구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천지일보 2024.03.19.

천 소장은 “농구는 매개체다. 다문화 가정과 그 아이들이 농구를 통해 하나가 되고 친구들을 사귀고 유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겐 정서 발달에도 많은 도움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출생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사회는 이미 사회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바로 다문화 인식개선과 미래인재 양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제 다문화 사회를 넘어 다민족 국가가 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 이 땅에서 자라고 있으니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볼 때까지 이 일은 계속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천 소장은 마지막 이루고 싶은 소원으로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원들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다문화 가정 출신에 방황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농구를 하며 새로운 사람이 됐고 결국 훌륭한 인재가 됐다”며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인재가 분명 농구단 안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