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늘려줘도 ‘시큰둥’
고금리·자잿값 급등 영향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2022.6.5 (출처: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2022.6.5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재건축·재개발 등 일부 도시정비사업장이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장기화, 건설 원자잿값 상승 등이 겹치면서다. 

특히 ‘불패 신화’로 인기를 끌던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도 유찰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사비를 늘리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시큰둥한 상황이다.

13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의 ‘신반포27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1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유찰됐다.

해당 단지는 소규모지만 지하철 3호선과 가깝고, 한강변에 위치해 알짜배기 단지로 꼽혔다. 조합은 3.3㎡당 공사비를 기존 908만원에서 959만원으로 5.6% 올린 뒤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냈다. 다만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는 없었고, 결국 유찰됐다.

다른 강남 소재 단지에서도 같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4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세 번째 입찰공고를 냈다. 조합은 3.3㎡당 공사비를 760만원 제시한 뒤 두 차례 유찰되자 공사비를 810만원으로 인상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설사들이 도시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면서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가 위축됐고, 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건설사들이 옥석가리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대출 부담이 늘자 건설사들이 수익성이 확실한 사업만 수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올해 부동산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사업성 위주의 선별 수주 전략으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사들의 수주실적도 곤두박칠 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지역별 건설수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사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축 수주는 수도권에선 전년보다 31.4% 감소한 63조 2천억원이다. 지방에선 29.6% 감소한 52조 7천억원을 기록했다.

한편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공사비를 두고 갈등하는 시공사와 조합도 늘고 있다.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해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선별 수주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리모델링 단지들은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무리하게 수주 경쟁을 벌이지 않고, 선별 수주에 나서고 있다”며 “건설 원자잿값 급등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건설사들이 정비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사업성이 다소 떨어지는 정비사업 단지는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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