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고려가요 중에 ‘동동(動動)’이라는 노래가 있다. 일년 열두 달 월령가로 불려 진 동동은 임을 그리워하는 한 여인의 외로움을 담아냈다. 현전하는 고대가요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달거리 노래’이자 불후의 상사곡이다.

또한 얼마 되지 않은 고려가요 가운데 가장 많은 이야기로 다듬어진 노래다. 일부 학자들은 남녀 간의 성애를 은밀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가요가 언제부터 유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중기까지 불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동동’이 연주곡으로도 공연됐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조선 중종 때 노래가 난잡하다고 하여 정읍사와 함께 폐지된다.

‘동동’은 총 13연, 봄 여름 가을 겨울 12개월간의 사연을 표현했다. 지금도 많이 불리고 있는 판소리 ‘사철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동동’은 북소리, ‘다리’는 악기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다. 각 연을 나누면서 음악적 흥취를 고조시킨다. 정월 얼어붙은 냇물이 녹고 있는데 홀몸으로 외롭다는 심경으로 시작한다.

1월 나릿므른(냇물)은 / 아으 어저 녹저 하는데 / 누리 가운데 나곤 / 몸하, 호올로 녈셔 / 아으 동동다리

지금 같은 3~4월 꽃 피고 꾀꼬리가 우는 가절 여인은 임의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하고 있으며 자신을 홀로 둔 외로움을 토로한다.

3월 나며 개(開)한 / 아으 만춘(滿春) 달욋고지여 / 남이 부롤(부러워 할) 즛(모습)을 지녀 나샷다 / 아으 동동다리

4월 아니 잊어 / 아으 오실셔, 꾀꼬리 새여 / 무슴다. 녹사(錄事, 고려때 7품의 관리) 니만 / 옛 나를 잊고 계신가 / 아으 동동다리 (하략)

가요 ‘동동’은 고려 말 여수 고돌산진보에 있던 유탁(柳濯, ?~1371) 장군이 왜구를 물리치자 군사들이 기뻐 불렀다고 한다. ‘진보(鎭堡)’란 성을 뜻하며 잦은 왜구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구축한 해안 군사기지이다.

<고려사> 악지 기록에 ‘소호동동’다리의 인근 지역인 장생포에서 시중(侍中) 유탁 장군이 왜구를 무찌르자, 군사들이 기뻐하며 ‘생포곡(長生浦曲)’을 지어 불렀다.

조선시대 기록인 <증보문헌비고>에도 비슷한 일화가 실려 있다. 여기서는 군사들이 부른 노래를 ‘동동’ 혹은 ‘장생포곡’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는 기록으로 전해지는 동동다리를 소재로 매년 10월 ‘동동북축제’를 연다. 지난해까지 4회째를 기록하고 있다. 신나는 북 축제라서인지 해외 여러 나라의 민속팀도 참가한다고 한다.

‘동동’ 유적 ‘고돌산진보’는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에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2313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진보라고 해도 작지 않은 성이다. 이 유적은 현재 민가들이 지어져 성벽을 분간할 수 없이 파괴됐다.

다만 고돌산 정상에 축조된 토성의 유구가 비교적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조사단은 이 진보 유적에서 고려말 와편과 자기편, 조선시기 청화백자편을 수습, 고려 후기 성지임을 확인했다.

한려수도 여수시는 ‘미항’으로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국가적인 투자로 해안 섬들을 연결하는 연육교는 장관이다. 고려가요 가운데 특정한 지역을 소재로 하는 것은 ‘동동’뿐이다. 화양면 고돌산진보를 역사유적으로 정비해 새 관광명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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