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 /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통통 털어서 다줬어 / 띵호와 띵호와 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 명월이 하고 살아서 왕서방 기분이 좋구나 / 우리가 반해서 하하하 비단이 팔아서…’

지난 60년대 상영된 ‘비단이 장사 왕서방’이란 영화의 주제가다. ‘띵호와’란 무슨 뜻일까. ‘가장 좋다. 더 좋은 일이 없다는 ‘顶好’를 표현한 것이다. 당시 이 노래가 유행하여 필자도 어린 시절 즐겁게 따라 부른 적이 있다.

6.25 전후 시장통에서 대부분 중국 음식점을 한 화교들은 열심히 살았다. 한번 옷을 사면 그 옷이 다 헤질 때까지 버리지 않아 때가 꼬질꼬질한 복장으로 주방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절약 정신이 투철하여 대부분 부자가 됐다.

지금은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 가운데 ‘메이꽌시’가 있다. ‘괜찮다. 문제없다. 염려 없다 뜻의 ‘没关系’다. 한국인들이 중국을 가면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씨에 씨에’를 연발하지만 이들은 곧잘 ‘괜찮다’라는 응답의 ‘메이꽌시’, 혹은 ‘부커치(不客气)’로 응수한다.

중국 대륙은 과거 수천년 역사 동안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고대 삼국은 대륙을 통해 문화와 종교를 전수 받았다. 가장 큰 정신적인 교감은 불교였다.

불교를 통해 삼국은 대륙의 학문과 문화를 체득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경쟁적으로 대륙의 문화를 수용하려 애를 썼으나 신라가 가장 뒤처졌다. 그것은 땅이 동쪽에 치우쳐 중국과의 교류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남해 바닷길로 양나라와 통호를 원했지만 백제 군사들이 배를 막았다. 육로인 소백산을 넘어 한강을 통해 중국 산동을 가려 해도 고구려가 강을 막았다. 6세기 중반 진흥왕이 소백산을 넘어 고구려·백제와 전쟁을 시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진흥왕은 장인이기도 한 성왕이 걸림돌이 되자 옥천 전쟁에서 사로잡아 시해했다. 수많은 젊은 화랑도를 희생시키며 소백산을 넘어 지금의 한강을 장악한다. 신라는 이를 통해 북제와 교류하면서 그제사 숨통이 트였다.

우리의 고대 문화 역정은 따지고 보면 고대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부분이 없다. 우리의 자랑인 인쇄술, 고려청자 기술 그리고 동양학 분야도 대륙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 한반도에 야욕을 품을 때는 총력을 기울여 저항한 역사도 있다. 그것이 문무왕 시기인 AD 675년 당나라 20만 대군의 침공을 저지한 경기도 연천 매초성 전투였다. 임전무퇴의 결기로 한반도를 지킨 신라였다.

지금부터 200년 전 추사 김정희는 부친을 수행, 연경에 갔다. 20대 초반의 미청년인 추사는 다른 사행 관리들과 다르게 청나라 석학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역관을 대동하고 어렵게 만난 학자가 옹방강이다. 옹방강은 당대 최고의 경학자로 존경을 받았는데 추사와 필담을 주고받고는 그만 감동을 받는다. 조선의 청년 선비의 높은 지식과 가슴에 타오르는 학문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추사는 당시 같이 환담을 나눈 중국 석학들을 통해 많은 서적을 얻고 그들의 학문을 더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도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당, 송대 불경과 각종 사료 그리고 한국에는 한 점도 없는 고서화도 중국을 가야 접할 수 있다. 고대 불교 유물과 서화를 연구하는 데 중국학을 외면하고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만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씨에 씨에’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정부가 문제를 일으키느냐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맹종을 뜻하는 것이어서 야당 대표의 말로는 격이 맞지 않는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에 대한 관계는 선린우호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우방과의 결속에서는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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