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온통 선거 이야기다. 방송 채널마다 선거를 놓고 말들이 많다.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 미디어들도 마찬가지다. 이 당은 어떻고 저 당은 또 어떻고, 어느 당이 옳고 어느 당이 그른지, 누가 쓸 만한지 누가 쓸데없는 인간인지, 무수히 말들이 오간다. 세상 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꼴들이 방송에서 신문에서 우리들 밥상머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화개장터에는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다’고 했는데, 이 정치판에는 ‘있어야 할 건 없고, 없어야 할 건 있다’. 참으로 기이하고 무섭고, 우습다. 염치고 나발이고 다 던져 버리고 금배지에 환장한 인간들이 죽기 살기로 덤벼들고 있다. 머리채를 쥐어뜯고 멱살잡이를 해대며 나에게 기회를 달라, 아우성이다. 권력에 걸신들린 자들이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어쩔거나, 아이들은 벌써 다 알고 있다. 모질게 나쁜 짓 하는 인간이 더 잘 사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똑똑한 청년들은 다 알고 있다.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이상한 놈인지. 좋은 놈은 별로 없고, 거의가 나쁜 놈 아니면 이상한 놈들이라는 것도 안다.

과거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이 국회에 입성했다가 나중에 그만두고는 “국회가 코미디보다 더 웃긴다”고 했다. 그래도 그때는 ‘웃기는’ 정도로만 여겼다. 이주일 선생이 헤헤 웃으며 정치가 웃긴다고 하니, 사람들도 맞는 말이라며 같이 웃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코미디에 갖다 붙이지 말라며 정색한 이도 있었다. 어느 개그 작가는 코미디는 웃음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데, 정치가 무슨 즐거움과 행복을 주느냐며 씩씩거렸다. 맞는 말이다. 웃긴다는 말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진짜 웃기는 것이 있고, 말도 안 되는 희한한 소리나 짓을 웃긴다고 한다. 그러니, 정치와 코미디가 같이 웃긴다는 것은 맞지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이다.

신승훈의 노래에 ‘어제는 사랑이 오늘은 이별이~’라는 가사가 있다. 어제는 우리 대표님 최고라고 외쳤던 자가 오늘은 그 대표는 인간이 아니라고 침을 뱉는다. 세종대왕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연산군이었다는 것이다. 어제는 이 당 아니면 안 된다던 자가 오늘은 이 당은 당도 아니라며 날을 세운다. 어제는 누이, 동생 하며 장미꽃을 주고받던 자들이 오늘은 너 때문이라며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 어떤 것도 없다. 다 엿 바꿔 먹었다. 득이 되면 바로 내편, 손해다 싶으면 바로 아웃이다. 나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선거판에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절대자가 따로 없다. 그 곁에는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하고 아첨을 떠는 자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반드시 받겠다던 외상값도 야무지게 받아내고 있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자들을 철새에 갖다 대는 것도 옳지 않다. 철새가 철새인 것은 이유가 있다. 철새가 철 따라 옮겼다는 것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절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마땅히 감내해야 할 아름다운 의무다. 철새가 날아오르고 내려앉는 것도 때가 있고 이유가 있다. 자연의 법칙과 순리에 따라 사는 정직하고도 결백한 존재가 철새다. 누구를 배신하지도 않고 누구를 내치지도 않는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들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에 우리들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결국 표를 던지는 사람들 몫이다. 정치 수준이 저급한 것은 정치하는 자들이 저급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에 배지를 달게 해 준 국민들의 수준이 저급하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선수 선발을 잘한 덕분이다. 학연·지연·혈연 다 무시하고 싹수 있는 선수들만 뽑았기 때문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윗마을 아랫사람 한데 모여 오순도순 장을 펼치는 화개장터처럼,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내가 죽나 네가 죽나, 사생결단하고 머리 깨지고 피 튀기며 싸울,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출발 신호는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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