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같은 콘텐츠라고 해도 어떤 미디어 플랫폼을 만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비록 과거 당시에는 실패했거나 반응이 미지근했어도 시대를 앞서가는 콘텐츠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섣불리 콘텐츠의 성공과 실패를 판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사례를 더 드러내 주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잘 알려져 있듯이 황동혁 감독이 10여년 전 이상부터 부지런히 기획안을 제시했지만, 국내 어느 곳에서도 제작에 나서지 않았다. 이를 두고 좋은 콘텐츠 기획안을 두고 알아보지 못한 담당자들의 무능함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이는 개인들의 능력 여부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지상파와 공중파, 케이블 등은 ‘오징어 게임’을 받아들일 수 없는 미디어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온라인동영상 플랫폼(OTT)에 적합한 콘텐츠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더구나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에 노출되었을 때 더욱더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던 콘텐츠 기획안이었다.

아예 제작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제작은 되었지만 크게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한 사례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다가 뒤늦게 제대로 미디어 환경을 만나면서 주목을 받는 경우가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크라임씬’ 시리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시즌 1을 시작으로 2015년, 2017년 시즌 2, 3이 방송되었는데 그 이후로 제작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1%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7년 만에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으로 옮겨 방송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크라임씬 리턴즈’가 성공한 것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마니아 팬들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프로그램이 이런 사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라임씬 시리즈 같은 특징을 봐야 한다.

크라임씬 시리즈는 ‘마피아 게임(Mafia game)’ 포맷이다. 이는 드미트리 다비노프가 1986년 창안했는데, 늑대 인간 게임이라고도 한다. 이 포맷은 서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여러 단서를 추적해서 소수의 마피아를 찾아내는 이른바 파티(Party Game)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은 마피아를 찾아내지 못하면 차례차례 죽임을 당하게 되므로 빨리 마피아를 찾아내야 한다. 마피아는 선량한 시민을 마피아로 몰아서 제거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시청자는 전혀 의외의 사람이 마피아로 몰리거나 마피아였다는 사실에 반전의 흥미를 갖게 된다.

크라임씬 시리즈도 출연자들이 각자 부여된 역할에 따라서 연기를 하고 누가 진짜 범인인지 추리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트장에 배치해 둔 단서들이 화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이를 잘 포착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이러한 단서들을 얼마나 잘 포착하는가에 따라서 흥미가 배가되고 몰입이 더 증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일반적인 지상파, 공중파, 케이블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사소하거나 미미한 단서들이 추리를 하는 것이 흥미 증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파악하기 위해 매우 집중을 해서 봐야 한다.

하지만 수용자에게 지상파, 공중파, 케이블은 고도의 집중이 힘들다. 특히 놓쳤다면 거꾸로 돌려봐야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하다. 텔레비전은 너무 많은 정보가 담기면 시청자들은 쉽게 피로증을 느낀다. 간혹 매우 흥미롭게 빠져드는 마니아들만이 견딜 수가 있다. 시청률은 당연히 낮아진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잔인하고 극단적인 설정이 많은 ‘오징어 게임’과는 다른 결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크라임씬 시리즈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 맞게 제작이 되다 보니 훨씬 더 마니아층에 맞는 구성과 내용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더구나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예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여전하다. 시청률에 관계없이 마니아층이 있던 콘텐츠의 경우에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시스템에 잘 부합한다는 점이다. 이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기준은 마니아가 얼마나 있는가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마니아가 있다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도 조금씩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드러내 주는 콘텐츠 제작이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 맞게 이뤄져야 할 때이다. 이미 2012년 싸이 때부터 증명이 되었는데 우리는 잊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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