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파묘(破墓)’의 흥행은 생각 밖이었다. 묘를 파헤치다니 영화 이름 자체가 그렇게 친근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더구나 오컬트물이 결국 공포영화인데 공포물은 흥행이 어렵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이러니 일부에서는 정치적 특정 세력이 상영관에 몰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과 다르다. 이 영화는 오컬트 미스터리물이라 내용이 거의 알려진 바도 없으니 애초에 정치적인 동기가 개입될 여지가 적다. 수백만 명이 개봉 며칠 만에 몰리는 것은 외적인 요인일 수 없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주목받은 점이 작용했을까? 그곳에서도 대단히 화제가 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수상을 한 것도 아니라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콘텐츠 외의 내용이 아니라 내적인 요인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영화 비수기로 접어드는 2월 말의 흥행은 예사롭지 않다.

본래 한국에서 오컬트물은 그리 팬이 많지 않았다. 미스터리한 초자연적인 심령 현상을 다룬 데다가 서양식 공포물은 비인기였다. 대개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초창기에는 서양과 같은 퇴마물이 주류를 이뤘으니 일반 관객에게는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인식할 수 있었던 사례가 ‘곡성’이었다. ‘곡성’은 예상을 깨고 거의 7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곡성’은 크리처물에 가까웠다. 초자연적 현상의 중심에 특정 크리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파묘’는 ‘곡성’보다 매우 빠른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파묘’는 어떤 점이 다를까?

일단 ‘파묘’는 한국적 색채가 강하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김윤석, 강동원 주연의 영화 ‘검은 사제들’은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해 선전했지만, 서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톨릭의 퇴마 사제 캐릭터였다. 이 때문에 한국이 배경이긴 하지만 기시감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다음 작품으로 장재현 감독이 선을 보인 ‘사바하’는 좀 더 한국적인 면이 부각되었는데, 역시 종교적인 관점의 틀에서 볼 수 있었다. 다만, 영화적 수확이라면 신흥 종교 문제를 파헤치는 주인공을 통해 기독교를 넘어 불교 그리고 토속 신앙까지 넣으며 종교 미스터리물로 만들었다.

이런 연장선에서 영화 ‘파묘’는 종교를 아예 배제하고 풍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보조로 무속을 양념으로 버무렸다. 따라서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오컬트물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파묘’는 다른 작품과 달리 스토리의 개연성이 충실하다. 이러한 점은 ‘곡성’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파묘’는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 있지만, 보게 만든다. 어쨌든 몰입을 할 수 있게 스토리라인을 중층으로 구성하고 있다. ‘파묘’라는 제목과 일치한다. 파도 파도 그 비밀은 여러 겹으로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컬트물은 별 게 아닐 수 있는 이야기 자체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중요한데 감독은 이를 꿰뚫어 보고 있다. 특수효과나 액션씬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관객의 눈을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아울러 캐릭터의 맛이 잘 구현되어 있다. 영화 ‘곡성’에서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출현이 공감을 얻기 힘들었다. 무속과 크리처와 비대칭이었다. 왜 시골 마을에 갑자기 크리처가 나타나는지 이해할 수 없고 공감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일본어를 하는 크리처의 존재는 난데없어 보였다. 물론 ‘파묘’에도 크리처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튀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이식된 크리처가 아니었고, 한국인이라면 배경지식이 있는 터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클리셰들이었다. 아울러 정령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논란의 여지를 줄였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도전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미션들도 있었다. 떡밥이라 부르든 코드라 부르든 해석할 여지가 많은 설정과 컷을 상당히 많이 배치해 두었다. 이러한 점은 영화관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든다. 여럿 되는 실마리들이 SNS에서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를 당장에 확인해 보고 싶게 한다.

특히, IPTV나 OTT에 공개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화제가 될 때 관람하는 것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은 일이 된다. 콘텐츠 관람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효용성을 갖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능하다. 이러한 것은 영화 ‘서울의 봄’ 흥행 당시 유행했던 ‘심박수 챌린지’와 닿는 점이 있다.

그렇다고 반일 코드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위를 한 이들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 행위에 관한 판단은 이미 내려진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스토리라인이다.

반일본 기치를 내세운다고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영화 ‘노량’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일본 캐릭터가 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만 이런 한국적 색채가 강한 오컬트 영화가 해외에서 호응을 받을지는 모를 일이다. 너무 한국적인 것은 우리 안에서만 폭풍이 되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