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농어 목, 동사리 과의 ‘동사리’는 산란기에 ‘구구’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구구리’라 또는 ‘꾸구리’라고 하는데, 이 물고기는 이름 외다 숨넘어갈 판이다.

개뚝지, 개미고기, 구구라기, 구구라지, 구구락지, 구구리, 구굴무치, 구굴치, 구그리, 구꾸라지, 구꾸리, 국지, 굼문탱이, 굼붕탱이, 꺽정이, 꺽징이, 꾸거리, 꾸구락지, 꾸구리, 꾸글이, 꾸꾸락지, 꾸꾸리, 꾸부리, 꾹굴이, 꾹저구, 농꼬, 도둑놈, 도뿍지, 두구리, 두굴무치, 두꾸리, 똥꼬, 뚜거리, 뚜구라지, 뚜구리, 뚜굴마지, 뚜굴모지, 뚜그리, 뚜글리, 뚜꾸리, 뚜꾸지, 뚜꾸치, 뚜끼지, 뚜버구, 뚝거지, 뚝저구, 뚝저구리, 뚝제기, 뚝중이, 뚝지, 뚝지기, 뚝직이, 뚝찌, 뚯지, 망태, 먹통이, 망챙이, 멍챙이, 멍청이, 멍텅구리, 몽께, 매디, 물무타레, 바보고기, 바추리, 백구리, 백어리, 본심이, 부거리, 부구락지, 부구리, 부그리, 북물탱이, 북어리, 북지, 북쭈구리, 북찌, 분무치, 불매리, 불매탕구, 불매탱구, 불메뚜기, 불무딩이, 불무치, 불무태, 불무태기, 불무텡이, 불무퉁이, 불무티기, 불묵터기, 불묵테기, 불묵티이, 불문지기, 불문탱이, 불뭉치, 뻐구리, 뿌거리, 뿌구락지, 뿌구리, 뿌굴이, 뿌굼치, 뿌꾸마리, 뿌리기, 뿌주구리, 뿌쭈구리, 뿍어리, 뿔구리, 우구락지, 우구리, 죽은젓, 죽은좃, 중꾸구리, 중뚜구리, 쭈꾸지, 쭉저거리, 쭉제기, 참복찌, 후구락지 등이다.

이러니 같은 고기를 눈앞에 두고 사람마다 다른 이름을 대기 일쑤다.

이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 기준으로만 보면 ‘꾸구리’ ‘동사리’ 말고는 전부 지역 방언이다.

동사리라는 이름은 겨울을 나기 때문 ‘동(冬)살이’, 돌 밑에 가만히 숨어 지내서 ‘돌살이’, 돌 밑에 웅크린 채로 한곳에 머물러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동(垌·둑)살이’라고 하던 게 ‘동사리’로 되었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인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도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전어지(佃漁志)’에서 좀처럼 둑 밑에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는 특징 때문에 ‘둑지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쓴 조선 중기의 문신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동사리의 이름을 ‘꾹저구’라고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송강 정철이 선조 13년(1580년) 정월에 강원도관찰사 벼슬을 받고 내금강, 외금강과 해금강, 관동팔경을 두루 구경하러 다니던 참에 강릉 연곡현을 지날 때였다고 한다. 관찰사가 온다 하니 현감 처지에서야 얼마나 어려웠겠나. 맛나고 귀한 음식을 장만하려 했지만, 하필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 고깃배를 띄우지 못했다고 한다. 궁리 끝에 연곡천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탕을 끓이는데, 이를 맛본 송강이 맛이 참으로 시원하다고 하면서 대체 무슨 고기로 끓인 것이냐고 묻는다. 그때까지 이름 없이 잡아먹던 고기라서 다들 머뭇거리는데, 거기 섰던 사람 중 하나가 나서 ‘저구새가 내려와 꾹 집어 먹은 고기’라고 답한다. 이 말에 송강이 “그러면 ‘꾹저구’라 하면 되겠다”고 해서 그날부터 ‘꾹저구’가 되었다고 한다.

옛 선비들조차 동사리의 이름을 하나로 통일해 부르지 못했던 것 같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항상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불교에서는 항상 깨어 있는 수행자의 자세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범종(梵鐘)·법고(法鼓)·운판(雲板) 등과 함께 어판(魚板)은 불전사물(佛殿四物)에 속한다. 중국에서 유래된 이 법구는 고기의 배 부분을 비워 나무막대기로 고기 배의 양쪽 벽을 쳐서 소리를 내게 하였다.

이렇듯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항상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사리는 고양이처럼 빛의 밝기에 따라서 눈꺼풀이 열고 닫힌다. 그러니 물고기 중 ‘동사리’는 유독 수행하고는 먼 물고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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