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귀리’를 한자로 이맥(耳麥), 연맥(燕麥), 작맥(雀麥), 광맥(穬麥), 춘광(春穬)이라 하고 영어로는 오트(Oat)라고 한다.

우리는 고려시대에 원나라가 군대의 말먹이로 가져오면서 전해졌다.

고려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요 정치가였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이수교(李讐校)의 시에 다시 차운하다’라는 시에 “牛桃葩始綻(우도파시탄, 우도는 꽃봉오리 막 피어나고) 鷰麥葉初繁(연맥엽초번, 귀리는 푸른 잎 무성하기 시작하네)” 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여기서 앵도(櫻桃)를 우도(牛桃)로 귀리를 연맥(鷰麥)이라고 했다.

한편 조선시대 농민들을 위한 지침서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귀리(燕麥)를 이모(耳牟) 또는 영당맥(鈴鐺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진황(賑荒) 6조 제5조 보력(補力)에 재미있는 내용이 나온다.

‘구황(救荒)하는 풀로서 백성들의 식량에 보충할 만한 것은, 마땅히 좋은 것을 골라서 학궁(學宮)의 여러 선비들로 하여금 두어 가지 종류를 추리게 하여 각각 전해 알리게 해야 한다’면서 ‘범중엄(范仲淹)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강회(江淮)를 안무(按撫)할 때 큰 흉년이 들었다. 백성이 먹는 오매초(烏昧草)를 왕에게 바쳤더니, 이것을 육궁(六宮)에 선시(宣示)해서 사치하는 것을 억제하였다.

양신(楊愼)이 말하기를, “맥(麥)의 음(音)을 매(昧)라고도 하니, 오매초는 지금의 연맥(燕麥)을 말한다. 회남(淮南)에서는 보리를 매라 하므로 그 음을 따서 글자를 쓴 것이다”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연맥은 곧 들기장(野稷)인데, 승암(升庵)이 미처 상고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고 나온다. 여기서 연맥은 곧 들기장이라고 했지만 연맥은 ‘귀리’고 들기장은 ‘피’를 말한다.

영조 때 강화유수 박사익은 “신이 안변에 도착하여 논밭 경작의 편의 여부와 곡물 소출의 다과 상황을 자세히 물어보니, 경작한 곳마다 귀리의 소출은 몹시 적고 기장과 조의 소출은 배나 많았습니다. 민가에서 조를 심지 않고 귀리를 심는 이유는 단지 귀리가 환곡(還穀)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북관(北關)에서 귀리를 환곡으로 쓴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는데, 민호에 강제로 나누어 주고 가을에 조세를 거두어들일 때에 독촉하므로 부득이 파종하고 수확하여 도로 납부할 환곡의 수량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른바 귀리는 소출이 적은 데다 늘 먹는 음식도 아니므로 쓸모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니, 만약 절미(折米)로 바꾸어 거둔다면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고 묵은 폐단도 사라질 것입니다(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 1년(1725) 5월 22일)”라고 했다.

현재도 귀리가 즐겨 먹는 곡물이 아니었듯이 이 당시도 귀리는 자주 먹는 것이 아니라 환곡을 위해 어쩔 수없이 재배했던 곡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귀리는 러시아, 캐나다, 폴란드, 핀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페인, 영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최대 주산지는 러시아 등이다.

귀리 열매를 거칠게 갈거나 압착시킨 것을 오트밀(Oatmeal)이라 하는데, 이때 오트밀은 이것을 우유와 함께 쑨 죽 요리를 뜻하기도 한다. 귀리는 알코올·과자의 원료 또는 가축의 사료로도 쓰이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전통음식인 오트케이크(Oatcake)의 주재료이고 러시아에서는 카샤(Каша)라는 죽의 재료로도 쓰인다. 또한 국내에서는 귀리떡, 귀리밥, 귀리죽, 귀리술 등으로 활용된다.

귀리는 쌀보다 2배 많은 단백질을 함유하였으며, 지방질과 섬유소는 현미보다도 많아 섭취 시 소화가 쉽다. 또한 다당류의 일종인 베타글루칸(β-glucan)이라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혈당과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지질대사를 개선하여 체지방 축적을 막아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