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자기들끼리 뭔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듯 돌 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물고기가 있다. 그런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빽빽할 밀(密)’를 쓴 밀어(密魚)라는 이름을 가진 망둑엇과의 작은 민물고기다.

일설에 ‘밀의 이삭에 밀알이 빽빽하게 붙은 것처럼 몸이 작은 밀어 떼가 빽빽이 떼 지어 이동하는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밀어는 ‘퉁거니’라고 하기도 하고, 빠꼬맹이, 빠꼬마지, 빠꾸마리, 빠꼬마리라고 한다. 이밖에 빠고무치, 바꾸마치, 빠꼬무지, 빠구마치, 빠꽁마지, 바구마치, 빠고마치, 빵구미치, 뽀꼬마리, 빠꾸마치, 뽀꾸마리, 뽀구마리, 뿌꾸마리, 뿌꾸마지, 참빠구마치, 빠꾸망이라고도 하며, 울산에서는 ‘바꾸마치’라고 부르며, 논산지방에서는 ‘을문어(乙文魚)’ 또는 ‘을문이’라고 한다.

머리는 위아래로 납작하고, 그 후방은 원통형이나 점차 옆으로 납작하다. 몸빛 깔은 사는 곳에 따라서 세 가지 색깔로 구분되기도 한다.

‘등황밀어(밀어)’는 전국적으로 서식하는 일반적인 밀어로 몸 전체가 노란빛이 돌고 얼굴이 깨끗하다. ‘줄밀어’는 남해안이나 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의 하류에 서식하는 밀어로 얼굴에 줄무늬가 강하게 보인다. 몸 전체에 얼룩무늬도 뚜렷하다. 암컷이 알을 배면 그 알 색이 환상적인 푸른빛을 만들어 낸다. ‘점밀어’는 제주와 강원도 일부 하천에 서식하며 뺨에 푸른 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점밀어를 ‘파랑밀어’라고도 하며 보기 쉽지 않은 밀어이다.

이렇듯 밀어는 채색과 무늬가 서식지나 계절에 따라 변이가 매우 심한 물고기이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은 몸빛깔이 검어지고 암컷은 암황색이 된다.

산란시기는 5월 상순∼8월 상순이며 호수에서는 4월 상순∼9월 하순이다.

수컷들이 작은 돌을 물어다 보금자리를 만들면 그 돌 밑에 암컷이 알을 낳고 수컷이 경쟁자들과 싸우며 알을 지킨다.

특히 이 밀어는 부성애 못지않게 논산지방에서는 효자고기로 알려져 있다.

조선 성종 때 충청도 은진현, 지금의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 강응정(姜應貞)이라는 효자가 살았다. 한 겨울에 병환 중인 어머니가 개장국을 먹고 싶다고 하셨지만 구할 수 없었다. 집에서 20리 떨어진 양촌장에서 어렵사리 개장국을 구해 논산천을 건너오던 중 얼음에 미끄러져 개장국을 다 쏟았다. 얼음 위에 주저앉아 자신의 불효를 탓하는데 넘어지며 깨진 얼음구멍에 작은 물고기가 몰려들었다. 응정이 이 물고기를 잡아다 어머니께 끓여드리니 맛있게 드시고 병환이 나았다. 이 물고기가 을문이인데 이런 이야기로 인해 효자고기로 불린다. 응정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성종이 효자정려(孝子旌閭)를 내렸고, 그가 만든 향약을 ‘효자계’로 불렀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32권 순일편(旬一編)에 ‘허숙중(許叔重, 허신, 許愼)의 <설문(說文)>에서 물고기 이름을 해석하면서 “낙랑 번국(藩國)에서 난다”라고 한 것이 7종이니, 세상에서 전하는 ‘낙랑 칠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소학> 자전(字典), <본초(本草)> 등 제가(諸家)의 서적을 상고하고 지방 방언과 서로 교감해 보니, 대략 판별할 수 있는 것이 다섯 가지이고 두 종류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라면서 ‘은진현(恩津縣)에 있는 어떤 물고기는 맛이 쇠고기 같은데, 내가 호남에 있으면서 여러 번 먹어 보았다. 이것으로 일곱 종류의 고기 가운데 빠진 것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나온다. 강응정이 개장국을 대신해 어머님께 봉양한 을문이가 ‘낙랑칠어(樂浪七魚)’ 중 하나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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