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올해는 ‘골든타임’이다. 취임 첫 해와 지난해는 제대로 된 국정을 펼칠 수 없었다. 이 또한 ‘정부의 무능’이지만 이미 지난 과거다. 내년엔 총선이 있고 그 다음 해에는 대선이 있다. 따라서 온전하게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올해뿐이라는 뜻이다. 이런 절박한 심경을 박근혜 대통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4대개혁’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지난 7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강한 톤으로 국정성과를 독려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께서도 국민을 대신해서 각 부처를 잘 이끌어주셔야 한다”며 “여기에는 개인적인 행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 ‘자기 정치’를 하는 장관들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의 이런 지적은 옳다. 국정을 맡은 장관들이 국정 대신에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것은 국민은 물론이요, 청와대와 여당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장관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야가 협의해서 결정해야 할 ‘공천 룰’에 대해 청와대가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고위관계자’ 이름으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동안 말로는 국정을 언급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총선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죽했으면 ‘공천 룰’, 그 가운데서도 전화여론조사를 하는 기술적인 세부사항까지 청와대가 태클을 걸고 나온 셈이다. 청와대가 지적한 내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청와대 입장이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국정에 전념하고 선거판에 기웃거리지 말라던 박 대통령이 이제는 ‘공천 룰’까지 거론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갑자기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속내를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열 번을 양보해서라도 청와대가 지금 ‘공천 룰’ 같은 데 신경을 쓸 때인가.

사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표 이전에 민경욱 대변인이 먼저 청와대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해 청와대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 발언이 적절했다. 그럼에도 불과 몇 시간 만에 말을 바꾸고 심지어 ‘공천 룰’까지 개입하는 모습은 국정에 전념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에도 금이 가는 얘기다. 혹여 TK 지역에 이른바 ‘박근혜 키즈’를 대거 전략공천 시켜서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발상이라면 빨리 그만두는 것이 옳다. 민주헌정사에 좋은 이름은 몰라도 오명을 남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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