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울산 롯데호텔에서 협의회 총회를 가진 시도교육감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그동안 목청을 높여 중앙정부에 대고 “2016년 누리과정 예산은 국고에서 지원하라”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마디로 ‘안 된다’는 싸늘한 반응뿐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육감들은 지난 5월과 7월에 개최된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도 “내년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 예산으로 편성하는 것을 거부한다” 밝혔고, 실제로 편성하지 않는 등 단체행동을 보였다.

어린이교육에 신경 써야 할 시도교육감들이 중앙정부 사업에 대놓고 거부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몇 년째 화근이 되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문제의 발단은 2012년 대선 때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 기인됐다. ‘우리나라 만 3∼5세 어린이라면 누구나 꿈과 희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수준 높은 교육과정을 제공한다’는 핵심 내용은 국민과 어린이를 둔 학부모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누리과정 예산지원 주체를 두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감들의 셈법이 달랐다. 교육감들은 당연히 국비로 지원하겠지 생각했지만 교육부에서는 지방예산으로 해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의견이 강경해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달 15일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로 규정한 ‘지방재정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올해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 지원과 지방채 발행 등으로 충당하고 내년부터는 시·도교육청으로 누리과정 비용을 떠넘긴 것인데,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감들의 반발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 3∼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누리과정 교육’의 핵심은 대선 공약에서 나타나듯 ‘수준 높고 공정한 교육 기회에 대한 국가의 보장’이다. 이러한 국가의 보장에서 가장 기본은 예산 지원일 테고, 시도교육감들은 수준 높고 공정한 교육이 현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영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법시행령을 고쳐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편성’ 하도록 했으니 뿔이 단단히 난 시도교육감들은 다음 차례로 누리과정 전면 포기와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청구 등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한다고 하니 어린이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새우등 터지는 고래싸움은 언제쯤 끝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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