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 칼럼니스트

 
2001년 1월 이수현씨는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다가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이씨는 고려대 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중이었다. 스물여섯 꽃 같은 나이였다. 벌써 14년 전 일이다. 우리들도 그의 이름을 잊지는 않았지만, 세월 따라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고 이수현씨의 고귀한 뜻이 잘 이어져 오고 있다. 사고 이후 그가 다니던 학교로 보내져 온 성금을 기반으로 장학재단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700명 가까운 동남아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다. 고인의 부친은 이 장학재단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해마다 그의 부모를 초청한 가운데 추모제와 장학금 수여식을 열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은 고인의 출신학교인 부산 내성고에 들러 그의 뜻을 기린다.

고인의 부모는 고인을 자랑스러운 아들로 기억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고인의 선행을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그 뜻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도 한국과 일본 간의 교류와 이해 증진에 공을 세웠다며 고인의 부친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일본은 과거사에 여전히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최근에는 자국의 헌법 정신에도 위배되는 자위대법 개정을 통해 역사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 문제 등 국가적 차원에서 보자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도 않은 문제들도 많다. 하지만 ‘의인’ 이수현씨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자세는 확실히 다른 뭔가가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안에서도 ‘의인’들이 넘쳐난다. 배우 김보성이 두 주먹 불끈 쥐고 ‘의리’를 외치지 않았어도, 우리들 주위에는 의로운 사람들이 늘 존재해 왔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기도 하고, 경찰을 도와 강도를 제압하기도 한다. 뺑소니 차량을 좇아 질주하기도 하고, 전쟁이 날 것 같다며 제대를 연기하는 군인도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낯선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빠져도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인정머리 없는 세태라며, 자국 언론에서도 한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몰인정한 세태 이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도와준 사람에게 가해자라며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이 딱 그 말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 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수십명의 학생들을 구한 어느 화물차 기사는 보상금은커녕 치료비 한 푼 지원받지 못하고 암과 싸우고 있다.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만 방화 장갑 하나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한다. 휴전선 철책을 지키다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려나간 병사는 제 돈으로 병원비를 내야 했다.

의인이 많은 나라, 훌륭한 국민들이 사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의인을 대하는 나라와 나라를 끌어가는 사람들은 자격 미달이다. 의인이 많은데도, 부끄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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