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영화 한 편에 천만 관객이 들었다 하면, 엄청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다섯 중 한 사람, 그러니까 집집마다 한 명 정도는 영화를 봐야 천만 관객이 나온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도, 천만 관객이 모여 들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천만은 안 되더라도, 흥행몰이에 성공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천만 관객의 기쁨을 우리 영화들이 누리고 있다. 우리 영화의 전성시대다.

요즘 우리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무엇보다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것이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래서 대중이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들려주고 보여 주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신나게 웃었는데 문득 눈물이 나거나, 실컷 울었는데도 잔잔한 웃음이 나오면, 그 영화는 뭔가 제대로 짚은 것이다. 메시지가 너무 강해도 재미가 없고, 재미만 있고 메시지가 없어도 심심하다. 관객들은 재미와 메시지를 다 원한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삼백 척의 왜놈군대와 싸우는 ‘명량’도 왜놈들을 두들겨 부수는 통쾌함과 함께 우리들이 듣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었기 때문에 큰 박수를 받았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라고 하는 말은 ‘불통’의 시대라며 답답해하는 국민들의 속을 파고들었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 이긴 것은 백성들이 도운 덕분이라고도 했다. 과연 그 말을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영화 속 장군은 그렇게 말해 주었고, 우리들은 깊이 공감했다.

영화 ‘베테랑’도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재벌의 자식이 함부로 사람을 부리고, 업신여기고, 모욕을 주고, 상처를 주고, 죽이기까지 한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목줄에 매인 개처럼 모멸을 견딘다. 성격 좋고 의리 만점인 형사는 “죄 짓지 말고 살라고 그랬지?”라며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영화는 액션과 코믹이 뒤섞인 오락물이지만, 던져지는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그렇잖아도 기업의 ‘갑질’이 우리들의 공분을 쌌던 터다.

영화 ‘오피스’는 살벌한 직장의 풍경을 오싹하게 그려냈다.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여린 여자 인턴사원이 살인마로 변해가는 모습은 고통과 모멸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칼을 묵주 삼고 그 칼로 사람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위안을 얻는 여린 여자 인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를 느낄 수 있으며, 그 분노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거나 나의 동료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공포는 귀신이나 환상이 아니라, 우리들이 매일 겪고 감내해야 할 현실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현실은 영화 속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고, 당장 나아질 기미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목소리 높여 말하려 하고,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노력이라도 있어줘야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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