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 1446년, 지금으로부터 569년 전이다. 한글은 중국에 대한 사대문화와 지배층의 특권의식 때문에 냉대를 받았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민족의 글로 생명력을 이어왔다. 사대부들은 한글은 여자들이나 쓰는 글이라 하여 암문이라 폄하하기도 했지만, 여성들 덕분에 한글이 이만큼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이 되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쓰기 편리한 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글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 하여 ‘한글’이라 이름 붙였다. 그럼에도 우리 것이라면 뭐든지 자신이 없던 시절에는 한글의 독보적인 우수성에 의심을 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고,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도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문자라고 극찬했다.

한글에 대한 우리들의 자부심도 크게 높아졌다. 한류 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만날 수 있게 됐고,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뜻도 모르는 영어를 크게 새겨 넣은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이제는 외국에서도 한글로 디자인 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게 됐다. 격세지감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 바르지 못한 말과 글이 사용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듣기 민망하거나 상대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비속어나 욕설은 분명 문제다. 비속어나 욕설은 한글의 정체성은 물론 인격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삼가는 게 좋다. 하지만 말을 줄여 쓰거나 간단한 단어로 대체해서 쓰는 것을 무조건 비난해서도 안 된다.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서 소통하는 SNS의 경우에는 그 속성상 짧은 문장과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문법과 격식에 맞게 정확하게 글을 주고받기에 적합한 통신 수단이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단어를 축약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글을 주고 받게 된다. 단어를 축약하고 생략하는데도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한글이 그만큼 과학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정보화,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훌륭한 글이라는 것이다.

기술 발달로 인한 통신 수단의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과 역동성을 갖고 있다는 게 바로 한글의 강점이다. 조선시대에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여 살았고 이 때문에 정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지역과 혈연의 유대에 유독 집착하는 것도 정착문화의 탓이다. 그런데 한글만은 지역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소통되고 공유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좀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이 영어나 외국어 전문 단어를 섞어 쓰기도 한다. 그것이 꼴불견이긴 하지만, 한글은 그마저도 받아들여 준다. 어떤 외국어를 갖다 붙여도 한글과 어우러진다. 한글의 열린 태도, 즉 개방성인 것이다. 그러니, 한글이야말로 기동성과 역동성, 개방성을 모두 갖춘 글로벌 문자인 것이다.

우리에게 이처럼 좋은 말과 글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 진짜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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