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일 못 찾는 중·고령층
55~64세 미취업 비율 ‘급상승’
고학력 전문인 경력단절 심화

정부, 노인 일자리 확대에도
경비·청소 등 단순 노무 집중
“다양한 전문 일자리 늘려야”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2023.10.11.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2023.10.11.
[핵심요약]

◆직장인들 경력단절 심화

은퇴 후 미취업 상태로 노는 중·고령층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고 현재 미취업 상태인 비율은 9년 새 10%p 이상 증가했고, 주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율은 5%p 줄었다.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온 고급인력들이 다음 경력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놀고 있는 셈이다.

◆단순 노무만 느는 노인 일자리

정부 노인 일자리 예산을 보면 2004년 212억원에서 올해 2조 264억원으로 20년 새 10배 불어났다. 정부는 올해 공익활동형의 경우 전년 대비 4.6만개 늘려 65.4만개를 제공하고 사회서비스형의 경우 전년 대비 6.6만개 늘어난 15.1만개로 2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단순 노무 직종에 집중돼 전문성 있는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정년까지 이제 몇 년 안 남았는데 퇴직 후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녀들이 있어 당장 장벽이 낮은 배달이나 택배 일에 뛰어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것도 결코 쉽진 않겠지만요.”

최근 기자가 만난 한 부장급 직장인의 한숨 담긴 목소리다. 평균수명이 사상 처음으로 90세를 넘는 등 우리 사회가 ‘100세 시대’를 맞은 가운데,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현장에서 만나본 많은 직장인들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어려움을 토로했다.

많은 사례가 중소기업뿐 아니라 국내 유수 대기업들이라는 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주된 일자리(가장 오랜 기간 종사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가 50세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영세회사에 다니는 이들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또 다른 50대 사무직 부장은 정년을 채우면 평생의 유통업 경력을 살려 해외로 나갈거라고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퇴직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현재로선 모은 돈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유통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고학력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력의 해외유출인 셈이다.

◆퇴직하고 노는 55∼64세

이러한 상황에도 은퇴 후 미취업 상태로 노는 중·고령층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분석해 지난주 발표한 ‘중고령자의 주된 일자리 은퇴 후 경제활동 변화와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고령층 인구 중 은퇴 후 미취업 상태로 남아 있는 비율은 최근 9년간 10%p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일자리 수가 1년 전보다 87만개 늘었지만 이 가운데 51%는 60세 이상이 점유한 일자리인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의 허리인 30대는 5만개, 20대는 1만개에 불과했다. 2023.12.06
지난해 일자리 수가 1년 전보다 87만개 늘었지만 이 가운데 51%는 60세 이상이 점유한 일자리인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의 허리인 30대는 5만개, 20대는 1만개에 불과했다. 2023.12.06

특히 그중 자신의 생애 주된 일자리(임금·비임금 근로 모두 포함)에서 퇴직하고 ‘현재 미취업 상태’인 비율은 2014년 27.9%에서 2022년 38.8%로 급증했다. 그간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온 고급인력들이 다음 경력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놀고 있는 셈이다.

반면 ‘생애 주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답한 비율은 같은 기간 34.6%에서 29.2%로 5.4%p 줄었다. 이직해 현재 재취업 상태인 비율도 29.8%에서 29.3%로 소폭 감소했다. 많은 이들이 주된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할뿐더러 퇴직·실직하더라도 다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아직은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이 필요한 55∼64세의 시기에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고령자의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에 따른 퇴직 평균 연령은 약 52세였다. 중·고령층 임금근로자의 약 30%는 회사의 퇴직 요구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주된 일자리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55∼64세 중·고령자들이 주 일자리 퇴직 후 재취업한 사례는 임금근로자로 재취업한 경우가 자영업·고용주 등 비임금근로자가 된 경우보다 많았다. 임금을 받던 근로자가 퇴직 후 자영업자로 전환한 경우는 2014년 9.9%에서 2022년 7.4%로 꾸준히 감소했다. 재취업 일자리 중 단순노무직인 경우가 33.1%로 가장 많았지만, 비중은 9년간 10.0%p 줄었다. 사무직은 6.3%에서 8.1%로, 서비스직이 12.0%에서 17.0%로 소폭 늘었다.

2025년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가 20%를 초과해 10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이 부양할 고령 인구(노년부양비)수는 올해 26.1명이지만 2040년에는 60.5명으로 급증해 젊은 층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일자리 확대에 안간힘, 내실은?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부도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체계 강화’를 국정과제로 두고 일자리 확대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주 올해 2조 264억원을 투입해 일자리 103만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노인 일자리 예산을 보면 2004년 212억원→2017년 5231억원→2023년 1조 5400억원→올해 2조 264억원 등 20년 새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유형별로 올해는 공익활동형의 경우 전년 대비 4.6만개 늘려 65.4만개를 제공하고 사회서비스형의 경우 전년 대비 6.6만개 늘어난 15.1만개로 2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참여를 위해 접수를 진행한 결과 이달 12일까지 전국적으로 약 130만명이 사업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도 지난해 10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같은 달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며 “노인 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의 일이며 미래의 나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는 65세 이상 1000만명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면서 “정부는 이에 걸맞게 노인 일자리를 대폭 확대해 어르신들이 더욱 보람찬 일상과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반면 이러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 기존 중·고령층의 경력을 살리는 방향이 아닌 단순 노무 직종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노인 일자리로 알려진 ‘실버 택배’의 택배원이 가방을 메고 길을 걷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노인 일자리로 알려진 ‘실버 택배’의 택배원이 가방을 메고 길을 걷고 있다. ⓒ천지일보DB

◆취업자 33만명 늘었지만 ‘편재’

취업률을 보더라도 경제활동인구 상의 문제가 드러난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는 30만명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지만 청년층과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40대 취업자는 되레 줄어들었다.

이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고용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취업자 수는 2841만 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32만 7000명(1.2%) 늘어난 규모다.

경제활동인구 나이별로 보면 60세 이상에서 36만 6000명, 50대에서 5만 9000명, 30대에서 5만 4000명 각각 증가했다. 반면 20대는 8만 2000명, 40대는 5만 4000명 감소했다.

15세 이상 고용률은 62.6%로 전년보다 0.5%p 올랐다.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15∼64세 고용률도 0.7%p 상승한 69.2%로 1989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6.5%로 전년 대비 0.1%p 하락했다.

취업률이 늘었음에도 취업자 대부분이 청년이 아닌 노인들이란 얘긴데, 이는 현장에서 경력을 가진 이들이 토로하는 상황과 상당한 괴리감을 보인다. 기존 취업형 노인 일자리 사업 대부분이 여전히 경비·청소 등 단순 노무 직종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주된 일자리 은퇴 고령층을 위해 취업형 노인 일자리를 확충해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득 보충이 가능한 취업형 일자리 수요 증가에 대비해 이에 집중한 확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기존 취업형 노인 일자리 사업은 여전히 대부분이 경비·청소 등 단순 노무 직종에 집중돼 있다”며 “최근 들어 단순 노무로 재취업하는 비율은 줄고 서비스직, 전문직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증가해 향후 다양하고 전문성 있는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2023.10.11.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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