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빵집에서 한 손님이 구매할 빵을 쟁반에 올리려는 찰나에, 엄마의 통제를 벗어난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손님의 쟁반을 쳐 빵이 바닥에 떨어졌고 아이가 빵을 밟았다.

이 상황을 목격한 아이의 엄마라면 손님에게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실수로 빵을 떨어지게 했네요. 빵값은 제가 대신 내겠습니다”라고 처신해야 맞다. 그래야 엄마의 대응을 지켜본 아이도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이런 손해가 발생하는구나!’ 하는 걸 느끼고 행동에 더 조심하게 된다.

인터넷에 올라온 위 예와 반대로 처신한 엄마의 사연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이의 엄마가 “죄송합니다”라고만 한 후 나가려 하자, 손님이 “빵값을 계산하셔야죠”라고 말했다. 엄마는 “본인이 사려던 빵을 떨어뜨려 놓고 왜 애한테 책임을 지우느냐?”라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손님이 실랑이가 싫어 “제가 기부하는 셈 치고 빵값 낼게요. 그냥 가세요”라고 하자 “내가 얼마나 잘사는지 아냐? 누가 누구한테 기부하냐?”고 하며 빵값을 계산했다니 스스로 자신의 품격을 깎아내린 어리석은 대응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을 써야 할 때 쓸 줄 모르면 부자가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주의 줘도 산만한 게 특징이라 실수할 수 있다. 실수한 상황을 아이의 인성이나 예절 교육으로 승화시키는 게 현명한 부모다. 현명한 엄마라면 “정말 죄송합니다. 빵값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아이에게 조금 더 주의하라고 교육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거듭 사과드립니다”라고 처신할 것이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품격있는 모습을 보며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엄마는 빵 하나로 아이가 훌륭한 인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린 셈이다.

아이에게 돈을 주어 빵값을 계산하라고 하면서 직원에게도 사과하라고 시켰다면 더 멋진 엄마가 됐다. 엄마의 차분한 대응을 지켜본 손님이라면 누구라도 엄마의 인품을 칭찬하며 실수한 아이에게도 따뜻한 미소를 보낼 것이다.

아이는 어떤 태도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지 배울 기회가 된다. 최소한 빵값만 계산하고 가도 센스있는 엄마이고 둘 다 기분 상하지 않고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었다. 몇천 원 갖고 아이 앞에서 추태를 보여서 이득이 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 상황판단이 미숙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자신을 지켜보는 아이가 부모의 행동에서 무엇을 배울지 항상 생각하며 조심해야 한다. 아이 앞에서는 싸움에 이기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양보하고 타협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게 산교육이다. 부모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항상 생각하고, 예의를 갖춘 모범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공공장소인 식당, 빵집, 카페, 마트 등에 갈 때는 어떤 행동에 주의해야 하는지 미리 교육하고 가야 한다. 예의 바른 행동, 다른 사람들의 공간과 규칙을 존중하는 태도, 소음을 주의하는 등의 내용이다. 아이들을 기죽이기 싫다고 이런 공중도덕을 가르치지 않으니,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만 알고 안하무인의 개념 없는 행동을 한다.

마트 시식 코너 앞에서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이쑤시개로 찍어서 계속 먹는데도 말리지 않고 대견하게 쳐다보는 부모는 무뇌아 같다. 머리는 비고 배만 부른 자식을 만드는 꼴이다.

빵집에서 아이들이 빵을 손으로 만지작거려도 그냥 놔둔다. 부모가 그 빵을 사가야 하지만 그러지도 않는다. 빵 조금 만진 게 무슨 대수냐는 투다. 이런 부모들 때문에 노키즈존이 늘어난다.

저출산 시대라고 아이만 낳는다고 애국자가 아니다. 아이를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국민으로 키워야 진정한 애국자다. 자기중심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당연히 자기중심적인 아이로 자란다. 이런 부모와 아이가 많아질수록 예절과 배려,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삭막한 사회가 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