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세상 모든 것들의 힘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쉬운 예로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부모의 사랑도 좋기만 한 것 같지만 지나치면 아이의 교육을 망치기도 한다. 질투도 그렇다. 적당한 질투는 열심히 살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고 최복현 작가는 어렸을 적에 중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가정형편이 안 되어서 못갔다고 한다. 당시 등록금이 전혀 없는 무인가 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에 간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인가가 나지 않은 학교이니 검정고시를 봐야 했지만 등록금이 없으니 자신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부러웠고 질투도 했다고 했다. 건설현장에서 잡역부를 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불문학 박사가 되기까지 삶의 원동력이 질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토마스 하디의 <아내를 위하여>라는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소설에는 대비되는 에밀리와 조안나가 나온다. 조용하던 마을에 쉐이드랙이 나타나고 에밀리와 사귀게 된다.

조안나는 에밀리와 정반대의 성격이고 자신감이 넘쳤다. 쉐이드랙이 자신에게 넘어오자 자신은 그 남자를 에밀리에게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하려고 간 에밀리의 집에서 쉐이드랙이 조안나와 헤어지고 다시 에밀리에게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생각이 180도 바뀐다. 결국 조안나와 쉐이드랙이 결혼을 하게 된다. 조안나의 질투심이 낳은 결과였다.

혼자 남게 된 에밀리는 돈도 많고 나이도 많고 결혼한 적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결혼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조안나는 남편에게 에밀리와 자신을 비교하며 불평을 한다. 그런 불평이 남편과 두 아들을 다시 바다로 나가게 했고 결국 돌아오지 못한 채 소설을 끝난다.

질투에 눈이 멀지만 않았더라면 더 나은 남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결혼 후에라도 질투가 그녀를 눈멀게만 하지 않았더라도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잘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에밀리에 비해서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질투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경우다.

질투의 힘은 대단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끌려간다. 질투의 힘을 어느 방향으로 쓰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가른다.

질투의 힘을 긍정적으로 쓰기 위해서 몇 가지만 기억하자. 
첫째는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면 이유를 생각해 보자. 혹시 질투라면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를 끌어내려서 이기는 방법은 둘 다 망치는 방법이다. 반드시 나를 끌어올려서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둘째는 더 가치 있는 일이나 사건을 찾아서 집중해 보는 것이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굳이 작은 일이나 사람에 얽매이는 것은 나중에 자신의 족쇄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는 먼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질투에 관한 일은 시간이 끼어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물론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도움이 된다. 질투심을 자산으로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버리게 두지는 말라. 질투심이 들어서면 행복은 멀리 도망간다. 좋은 쪽으로 쓰더라도 먼 훗날 행복할 수 있지만 현재는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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