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요즘 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에는 이용자의 매너와 신뢰도를 나타내는 매너온도라는 제도가 있다. 필자의 매너온도는 99도로, 100도가 없으니 이용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온도다. 필자와 거래한 397명의 거래자 중 396명이 “거래에 만족했다”고 응답한 덕분이다. 매너온도가 99도인 사람들은 약 0.04%로 전국적으로 1만여 명에 불과하다. 매너온도는 사람의 체온인 36.5에서 시작해 판매량, 나눔에 참여한 정도, 구매자들의 구매 후기 평가 등을 종합해 서서히 올라간다. 중간에 활동이 줄어들거나 나쁜 후기가 누적되면 온도가 내려가기도 한다.

한 매체의 조사에서 매너온도 99도 이웃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가 서울 강남구, 송파구, 성남 분당구 순으로 나온 게 흥미롭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란 말이 있는데, 위 조사의 지역 분포를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당근마켓을 사용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인생의 축소판이다. 확실히 강남 3구 사람들은 거래 매너가 깔끔하다. 자신이 판매한 물건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그 손해를 반드시 책임진다. 값싼 물건을 주로 거래하는 동네에서는 대부분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물품 대금을 받고 잠적하기도 한다.

강남에서 판매되는 물건과 다른 동네의 판매 물건을 비교해 보면 물품의 종류, 가격, 질 면에서 차이가 난다. 저소득층이 사는 동네에서는 물건이 닳고 낡은 상태에서 버리는 비용이 아까워 물건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강남에서는 명품급의 신발, 옷, 액세서리 등이 주로 매물로 나온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소비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고품질의 제품이나 브랜드 제품이 많이 거래된다. 잘사는 사람들은 왜 잘사는지 어렴풋이 느낀다.

예전부터 우리는 가난한 흥부는 천사고, 부자인 놀부는 악마로 교육받으며 자랐다. 현재 시대는 분명히 다르다. 지금은 공부나 노력으로 부를 일군 부자가 많다. 이런 부자들은 자신의 어릴 때 어려웠던 경험을 기억하고 나눔도 많이 한다. 학력도 대부분 높아 교양도 있다. 오히려 가난한 자들이 기초수급비 안 준다고 떼쓰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소득수준이 낮은 동네에 살아보면 곳곳에서 사소한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예의 없는 몰상식한 사람도 많다. 약속을 해놓고 1시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 되기도 한다. 시설이용권을 구매하고 사정이 생겨 정해진 날짜에 가지 못할 거 같아 환불 요청해도 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기간이 한 달이나 남아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가 가지 않는데도 말이다. 1만 원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싸우면 1만원을 얻는다. 대신 1만원 손해를 너그러이 양보하고 착하게 살면 1만원의 10배인 10만원이 들어오는 마법도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다.

얼마 전 작동은 잘되는 오래된 냉장고를 새 냉장고로 바꾸면서 5만 원에 판매한다고 올렸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용달차와 기사를 보내 냉장고를 가져가겠다”라고 했다. 냉장고를 운반하러 온 용달차 기사에게 “냉장고 운반비를 얼마나 받나요?”라고 묻자 “10만원입니다”라고 한다. 냉장고를 5만원에 사면서 운반비로 10만원을 지출한다니 마음이 불편했다. “기사님 제가 구매자에게 받은 5만원 드릴 테니 냉장고 배달받는 분에게 5만원만 받으세요”라고 했다. 결국 냉장고를 무료로 줬다. 구매자가 무척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당근마켓은 나눔의 장이다. 비싸지 않은 제품은 판매하지 않고 나눔을 하는 게 당근의 미덕이다. 따뜻한 거래를 많이 할수록 최대 99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고 점점 더 밝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표현된다. 자녀들에게 당근마켓 거래를 통해 경제 관념도 기르게 하고, 나누는 삶도 살도록 가르치면 교육적 효과는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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