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엊그제 인천 송도국제도시 A초등학교의 제19회 졸업식에 다녀왔다. 예전과 달리 요즘 초등생 졸업식은 겨울방학과 동시에 속전속결로 치러진다.

몇몇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기 위해 단상 위 교장 앞으로 걸어가다 공중부양을 연출하는 듯한 ‘슬립백 춤’이나 몸을 360도 돌리는 공중제비(텀블링)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여 웃음과 박수갈채를 터져 나오게 했다.

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춤동작으로 몸을 흔드는 학생들도 많아 졸업식장 분위기는 자유 발랄했다. 흥 많은 한민족 후예들이다.

졸업장을 받으러 나갈 때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학생 각자의 사진, 이름과 함께 미래 꿈을 영상으로 비춰줬다. 배우, 심리상담사, 만화가, 의사, 검사, 공학자, 게임메이커, 작가, 축구선수, 요리사, 회사원, 개그우먼, FBI 요원 등 각양각색이다. 미래 주인공들이 야무진 꿈을 꾸고 있어 기특했다.

이 학교의 졸업생은 한때 300명을 넘어섰으나 이번엔 6개 반, 151명이었다. 입학생과 졸업생이 줄어드는 상황은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올해 취학 통지서를 받은 아동이 사상 최저인 41만 3056명이라 한다. 출생아 수가 2016년 40만 623명, 2017년 35만 7771명에 이어 지난해 23만 5039명으로 줄었다.

초등학교 신입생이 현재 40만 명대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20만명 이하로 추락할 것이다. 조만간 교사 채용 감소, 학교 통폐합 등 교육 체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미국 뉴욕타임즈(NYT)에서 한국의 저출산 추세를 흑사병 유행으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유럽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인구문제가 대재앙을 앞둔 절박한 상황임에도 정부나 지자체 대응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전략 없이 미흡하기 짝이 없다. 현실적 진단과 동떨어진 임기응변식 정책이 난무하다.

대개 현금 또는 현물 지원 방식에 치중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국가 핵심 과제로 꼽았으나 후속 대책은 육아휴직급여 상한 인상 등 보건복지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하다.

지방 정부들도 지역 특색을 살리려는 기획력이 너무 부족하다. 광역자치단체 중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인천시는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출산지원 정책을 내놓고 흡족해한다. 1월 1일부터 인천에서 출생한 아이 모두에게 정부의 기존 출산정책 지원금 7200만원에다 2800만원을 보태주고 있다.

전남 목포시는 차별적인 출산장려금을 확대하고 있고, 경기 광명시는 임산부와 36개월 영유아 이동 편의를 무료로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 ‘아이조아 붕붕카’를 무료 제공하고 있다. 초고령지역으로 접어든 충북 영동군은 청년을 끌어들이기 위해 청년센터, 청년근로자임대주택 제공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런 혜택으로 과연 청년들의 비혼, 무자녀 세태를 되돌릴 수 있을까? 한국은 세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국가다. 2019년 10월 출생이 사망보다 적은 인구 자연감소를 보인 이후 10개월 만인 2020년 8월부터 총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10년 걸린 구간을 한국은 10개월 만에 달성했다. 또 합계출산율 0.78명에서 1년도 안 돼 0.08명 줄어 0.6명대로 진입했다. 이렇게 ‘광속’과 같은 속도로 극도의 저출산 현상을 보이는 나라는 없다. 100년 이후 단군의 후손 한민족이 사라질 것이라고 다들 얘기한다.

세계 6개 대륙 중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모든 곳이 인구 유지선 2.1명 이하의 저출산, 저성장을 겪고 있다. 그러나 총인구 감소 국가는 일본(2016년), 한국(2020년), 중국(2022년) 등 동북아 3개국이 유일하다.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은 저출산 속도를 최대로 늦추면서, 해외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이민정책을 잘 시행해 합계출산율 1.5명~1.6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보다 일찍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 또한 ‘지방 창생’ 같은 구호로 지역의 힘을 활용해 선방하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긴 했으나 우리 청년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너무 허덕이고 있다. 전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수도권을 찾은 청년들은 ‘먹이를 찾아왔으나 둥지가 없어 알을 못 낳는다’고 하소연한다. 수도권 일극 지역에 청년들의 발목을 잡아 두고는 고공행진의 저출산 사태를 막을 수 없다.

현금을 주고 아이를 낳아달라는 식의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 정부와 지자체의 모든 정책이 기-승-전-출산으로 수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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