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트로이에서 몇 ㎞ 떨어진 해안 근처에는 아킬레우스, 아이아스,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이 있다. 모두 트로이에서 전사한 영웅들이다. 해안을 따라 Sigeion, Rhoiteion, Ophryneion, Akhieion과 같은 고대 도시가 이어진다. 이 지역은 아주 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트로이 일대는 튀르키예에서 ‘트로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호머의 자연’이라고 해도 좋을 요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보호돼야 할 인류의 자산이다.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불렀던 터키(Turkey)라는 나라의 명칭을 튀르키예(Turkiye)로 바꾼 것은 터키가 영어로 칠면조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칠면조는 겁쟁이를 부르는 속어이기도 하다. 반대로 튀르키예는 용감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원래 터키는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 튀르크가 흉노에서 몽고로 이어지는 북방 유목민족의 별파인 돌궐족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튀르크는 막강한 아랍인을 제압하고 서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를 순식간에 정복해 오스만제국을 세웠다. 이들이 등장하기 전에도 지금 우리가 튀르키예라고 불러야 할 이 땅은 상고시대부터 다양한 민족이 명멸할 정도로 인간의 생존조건에 적합한 곳이었다. 고대에는 이곳을 아나톨리아라 불렀고, 에게해 연안은 소아시아라고 불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튀르크인의 나라가 된 것은 튀르크인이 지배자로 등장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마라마라해협을 지나 에게해 연안을 내려가면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로 유명한 트로이가 있다. 전쟁터보다 트로이 이외의 지역, 특히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주변의 섬에 살았던 사람들은 강자들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견뎠을까?

사람들은 항상 섬을 보면 매료된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가끔은 환경의 제약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할 것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수많은 섬과 겔트족 시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신성한 섬처럼 유럽 신화에서 섬은 중요할 역할을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다니엘 포의 로빈슨 클루소와 같은 문학작품에서는 섬 생활의 어려움과 도피성을 잘 그려냈다. 이 일대는 지금 행정구역상으로 차나칼레에 속한다. 물론 트로이도 차나칼레에 속하는 작은 마을이다. 에게해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긴 마라마라해의 아시아 쪽 입구가 차나칼레주의 위치이다. 이 해안의 보즈자다(Bozcaada) 섬과 괴크체아다(Gokceada) 섬은 수많은 전설의 배경으로 그들의 신화는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섬이 기억에 남은 것은 불행히도 전쟁과 자연재해 때문이다. 육지의 역사적 사건에 늘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주류가 기록하는 역사보다 그들의 삶은 신화 속에 존재한다. 신화가 그들의 역사라면, 이 섬의 주민들은 신화 속의 주인공이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섬들은 수천 년의 신화, 역사, 자연이 결합된 매혹적인 세계의 일부이다. 호머는 전투 과정을 실질적 사실과 바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그리스 올림푸스산에서 제우스가 주재하는 회의 장면을 서사시에 끌어들였다. 그는 인간의 비극적 역사가 발생하는 원인이 이러한 신들의 결정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신들은 트로이 왕국의 지리를 거론하기도 한다. 지도가 없던 시기에 트로이 지역의 조감도를 보는 것처럼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리적 설명은 제8권에 들어 있다. 이다(Ida)산은 트로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제우스는 이 산 정상에서 트로이 평원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을 관람한다. 트로이 최고의 영웅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파업으로 무력해진 아카이아 함대를 공격해 들어가는 장면이다. 산 정상에서 제우스의 시야에 들어온 일대의 지리적 장면은 이 지역의 현재 지리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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