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이다산 정상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트라키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호머가 스케치한 이 파노라마에는 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웅장한 ‘사모트라키(Samothrace)섬’은 트로이에서 북쪽으로 약 70㎞ 떨어져 있으며, ‘세멘디렉(Semendirek)’이라고도 부른다. ‘괴크체아다(Gokceada)’라고도 부르는 ‘임브로스(Imbros)섬’은 그 중간에 있다. 호머가 임브로스의 높은 산 때문에 사모트라키에서는 트로이 평원을 볼 수 없다고 설정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844년에 트로이를 방문한 영국 여행가 윌리엄 킹레이크(William Kinglake)는 호머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남쪽에는 ‘테네도스(Tenedos)섬’도 있고, 지금의 지도를 보면 임브로스섬 너머에 사모트라키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넵튠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 일리아드에서 묘사한 지리적 장면을 잘 볼 수 있다.

헬레스폰토스(Hellespontos)해협은 지금 차나칼레해협이라고 부른다. 마라마라해에서 가장 좁은 곳으로 남해의 이순신대교를 건설한 우리 기술진이 세운 다리가 있다. 호머는 일리아드에서 이 해협이 트라키아와 프라이모스 왕국의 경계라고 말했다. 지금도 이 해협은 여전히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이다. 트라키아와 트로이 왕국의 경계로서 이 해협의 역할은 일리아드 마지막인 제24권에 들어 있다.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온 프리아모스왕과 대화에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왕국의 경계를 남쪽 레스보스섬에서 동쪽 프리지아까지로 규정한다. 이 지형은 호머의 조감도와 일치한다. 트로이 남서쪽 모서리인 아소스(Assos)와 바바 번(Baba Burn)곶 사이에 레스보스섬이 웅장한 모습으로 바닷속에 솟아 있다. 일리아드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이 지역을 잘 알고 있었다. 아가멤논이 레스보스섬을 약탈하는 동안 아킬레우스는 저항하는 주민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 섬으로 갔다.

일리아드의 역사적, 지리적, 신화적 측면은 이후 이 섬과 주민들의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들 섬의 주민이 된다는 것은 과거로 깊이 뻗어 있는 문화의 동맥을 활용하는 셈이다. 전설적인 두 섬 사모트라키와 괴크체아다는 지금 차나칼레주에 속한다.

보즈자다(Bozcaada, Tenedos)섬의 역사는 BC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나칼레 박물관에는 트로이의 묘지 발굴 과정에서 발견한 초기 비석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섬에 대한 발굴과 고고학적 연구가 부족해 선사시대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이 섬에서 발굴된 공동묘지는 초기 청동기에서 철기시대(BC7세기~4세기)의 무덤이다. 이 공동묘지는 그리스와 오스만인의 무덤으로 사용된 덕분에 비교적 잘 보존됐다. 선사시대부터 수천년 동안 이 섬의 정착민이 지속된 것은 흑해, 에게해, 지중해 사이의 해로에서 중요한 전략적 위치 덕분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수많은 전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W 팔코너(W Falconer)는 1903년에 ‘스트라본(Strabo)의 지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게이안(Sigeian)곶 다음의 테네도스섬 반대편 해안에 아킬레이움(Achilleium)이 있다. 테네도스는 육지에서 40스타디아 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둘레는 약 80스타디아이다. 여기에는 에올리안(Aeolian)이라는 도시, 두 개의 항구, 아폴로 스민테우스(Apollo Smintheu)의 신전이 있다. 호머는 ‘스민테우스, 테네도스를 지배하는 자여!’라고 말했다.”

섬의 명칭은 처음 처음 정착한 곳에서 비롯됐다. 당시 테네도스는 아나톨리아 해안 콜내(Colnae)와 라시아(Lasia)의 도시들까지 영향을 미쳤다. 사이크무스(Cycmus)왕의 아들 테네스(Tenes)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다. 분명한 것은 테네도스는 그리스 점령 이전의 명칭이다. 트로이라는 명칭처럼 테네도스도 원주민인 아나톨리안어에서 유래됐을 것이다. ‘테네도스인처럼 열심히 비방한다’는 속담은 테네스에 관한 전설에서 파생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역사학자 스테파누스 비잔티누스에 따르면, 이 속담은 어떤 플루트 연주자가 사이크무스왕에게 테네스가 계모와 정사를 나누었다고 거짓 고발한 전설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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