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는 것을 보면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했다’는 소설 삼국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갈공명이 죽은 뒤에도 적이 두려워할 정도로 뛰어난 지략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였다. LG가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것은 5년 전 세상을 떠난 고 구본무 선대 LG그룹 회장의 ‘야구 유산’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치 제갈공명의 얘기처럼 말이다. 그것은 구 회장이 생전에 준비했던 일본 오키나와산 아와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였다.

그는 럭키금성 시절이던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LG 트윈스를 창단, 그해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1994년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초대 구단주였다. 하지만 1994년 우승 이후 성적이 부진하자, 구 선대 회장은 지난 1997년 해외 출장길에 오키나와산 아와모리 소주와 함께 ‘우승하면 최우수선수(MVP)에 주겠다’며 당시 80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준비했다. 하지만 끝내 세 번째 우승을 지켜보지 못하고 2018년 세상을 떠났다.

LG 트윈스는 올해 29년 만에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한국시리즈 우승 세리머니 도중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한 남성 LG 팬이 방송 중계 화면에 잡혔다. 스케치북에는 LG그룹 선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을 추모하는 ‘구본무 회장님 보고 계십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야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구본무 회장님이 하늘에서 정말 기뻐하시겠다” “우승을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겠다”는 글이 쏟아졌다.

LG 선수들은 올 시즌 전례 없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도 늘 구 선대 회장이 남긴 유산을 생각하며 더욱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정규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뒤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기 위해 염경엽 감독과 선수단은 혼연일체가 됐던 것이다.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한 LG 트윈스 3대 구단주인 구광모 회장은 그라운드로 내려와 염경엽 감독과 MVP 오지환 등과 포옹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오지환은 구 회장에게 우승 메달을 걸어줬고, 선수들은 구 회장을 헹가래 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동안 아와모리 소주 세 통은 잠실구장 LG 구단 사무실에 보관해두었다가 몇 년 전 경기도 이천의 LG 챔피언스파크 숙소 사료실로 옮겨졌으며, 롤렉스 시계는 20년이 넘도록 금고에만 보관됐던 터라 결국 수리센터로 향해 수리를 받았다고 한다.

LG 선수단에서 ‘친근한 구단주’로 추앙받고 있는 구 선대 회장은 ‘야구 유산’을 남겨 마치 삼국지에서 죽어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제갈공명과 흡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선수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구 선대회장의 숭고한 뜻을 담아 LG복지재단은 매년 ‘LG 의인상’을 시상한다. 생사기로에 놓인 인명을 구조한 소방관, 경찰관, 학생 등에게 상금을 주며 격려하는 상이다.

생전에 숲과 새를 좋아한 그는 자신의 호인 ‘화담(和談)’을 붙일 정도로 애정을 갖고 경기도 곤지암에 화담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수목장으로 자연 속에 영원히 잠든 구 선대 회장의 LG 야구단 사랑은 그가 남긴 야구 유산으로 인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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