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여자 펜싱 레전드’ 남현희를 처음 알게 된 건 2006년 1월,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대표팀 훈련에 불참하고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보도 당시만 해도 여론은 “대표선수로 열심히 훈련을 하지 않고, 참 이상한 선수도 다 있네”라며 비판적인 분위기였다. 펜싱협회에서는 그녀에게  2년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세계랭킹 2위까지 발돋움하던 상황에서 징계는 사실상 은퇴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가 쌍꺼풀 수술을 한 사유가 뒤늦게 밝혀졌다.

속눈썹이 눈을 찔러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고, 또한 이러한 사유와 함께 지방 이식수술을 받겠다는 것도 미리 감독에게 보고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여론은 급반전됐다. 한편으론 그가 징계를 받은 것은 펜싱협회 내부의 파벌싸움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후 항소 끝에 펜싱협회는 국가대표 6개월 자격 정지로 징계를 경감했다. 그는 펜싱 선수로 26년간 활동하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6개, 올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메달 숫자로는 박태환과 타이 기록을 갖고 있다. 은퇴 이후에는 예능 프로 TV 방송에도 출연해 얼굴이 더 많이 알려졌다.

지난 2주 동안 남현희는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최대 뉴스메이커가 됐다. 충격적인 재혼 결혼 발표에 이어 희대의 사기 사건에 말려든 것이다. 15세 연하의 재벌 3세 사업가 전청조씨와 재혼한다고 발표했는데 남자 친구가 알고 보니 여성이었고 사기 전과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이 희대의 결혼 사기극은 남씨가 재혼을 발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폭로가 쏟아지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남씨는 “악몽을 꾸고 있는 느낌”이라며 “운동만 해 어리숙하게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기가막힌 사기극에 속아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기극 내용을 살펴보면 부와 재물에 대한 욕망을 추구한 그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를 완벽하게 속인 사기꾼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최고급 주택에 사는 재벌 3세 혼외자를 사칭했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3억원대 최고급 외제 승용차와 명품을 사줬다. 그는 사기꾼의 화려한 배경과 재력에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모른다.

특히 펜싱을 배우겠다고 자신의 펜싱 아카데미를 찾아온 이후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특이한 경력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재혼을 결심한 그의 심리 상태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는 “국가대표를 하면서 태극기를 달고 국위선양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스스로 명예 실추의 장본인이 된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했다.

남현희는 희대의 사기극을 당하면서 스스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 희생양이 되기 쉽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이 그와 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피나는 훈련을 참고 견디며 각고의 노력 끝에 빛나는 성취를 이뤄낸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이다. 은퇴 이후에도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 제2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남현희는 부와 인기를 좇다가 사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남현희는 한때 우리나라 여자 펜싱의 상징이자 간판스타였다. 올림픽에서 여자 펜싱이 강한 경쟁력을 보여준 것은 그가 나름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154㎝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경기력과 정신력을 발휘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 펜싱 스타 출신으로 무리하게 펜싱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다가 결국 사기극에 말려 들었던 것이다.

어렵게 일군 명예도 순식간에 잃을 수 있다. 화려한 과거만을 돌아보며 허상을 좇으면 결국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남현희 사기극은 교훈으로 남겼다. 인간은 욕망이 충족될수록 더 큰 욕망을 추구하는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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