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3주기

삼성 신(新)경영 선언 30주년
시가총액 1조→431조원 성장

이재용, 귀국 후 수원 선영 찾아
추도식서 고인의 업적·뜻 기려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발언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3.10.18 (출처: 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발언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3.10.18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 수원=김정필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3주기를 맞아 이른바 KH(이건희)의 ‘경영철학’과 더불어 다양한 미술품 등 그가 남긴 유산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25일 경기 수원시 이목동 선영에서 열린 추모식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들과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의 참석이 관심을 모았다.

재계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오른 뒤 탁월한 경영 능력과 안목으로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쓰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선대회장은 지난 1993년 6월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소집해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된다”며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꼬집었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 신(新)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삼성의 체질과 관행, 의식, 제도를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는 품질로는 세계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진단한 것이다. 당시 삼성은 국내 1등이긴 했지만 해외에서는 2류, 3류 취급을 받았다.

19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하고 있다. (출처: 삼성전자)
19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하고 있다. (출처: 삼성전자)

◆세계 최초 256M D램 개발 성공
1995년 3월에는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휴대전화 15만대(500억원어치)를 소각하는 ‘화형식’을 하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삼성은 ‘신경영 선언’ 이듬해인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1996년 1기가 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선두 기업의 토대를 닦았다. 1992년 이후 30년 넘게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이 선대회장이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라는 ‘기술 중시’ 철학에 기인한 결과다.

이 선대회장의 ‘인재 제일’ 철학에 따라 삼성은 1993년 국내 최초로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하고 1995년에는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 선대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다. 그는 삼성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천지일보DB
삼성전자 서초사옥. ⓒ천지일보DB

국내 기업의 출퇴근 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이른바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삼성은 1997년 한국 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브랜드 가치는 877억 달러를 기록하며 3년 연속 글로벌 5위에 올랐고,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여개 품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선대회장이 1987년 11월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보통주 기준)은 1조원 미만으로 10위권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31조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1993년 자산 41조원이던 삼성전자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기준 448조원으로 10배 넘게 불어났고, 연결 기준 1993년 28조 68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302조 2314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었다.

본사 기준 4만 7607명이던 임직원 수는 작년 말 12만 827명으로 늘었다. 전 세계 임직원 수는 26만 6000여명(2021년 말 기준)에 달한다.

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리트리버. (제공: 삼성) ⓒ천지일보 2023.09.19.
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리트리버. (제공: 삼성) ⓒ천지일보 2023.09.19.

◆사회공헌활동, 경영의 한 축으로 삼아
이 선대회장은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도록 했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도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삼성사회봉사단을 1994년 출범시킨 이래,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 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맹인 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진행하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맡아 크게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1997년부터 올림픽 TOP(톱)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그의 꾸준한 스포츠 외교가 일조했다는 평이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011년 7월 7일 남아공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올림픽 유치가 발표되자 눈물을 흘리며 박수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011년 7월 7일 남아공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올림픽 유치가 발표되자 눈물을 흘리며 박수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유족들은 ▲문화·예술품 기증 ▲감염병 극복 지원 ▲소아암 희귀질환 환아 지원 등 3대 기증사업 활동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 등 유족은 작년 4월 고인이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000여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하고, 감염병 극복 지원(7000억원)과 소아암·희귀질환 지원(3000억원) 등 의료 공헌에 1조원을 기부했다.

유산의 약 60%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로,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상속 재산의 상당 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사회 환원이었다.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조선시대 석조 미술사 전공)이 광화문 월대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한 서수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문화재청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으로부터 이 석조각 2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2023.8.29. (출처: 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조선시대 석조 미술사 전공)이 광화문 월대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한 서수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문화재청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으로부터 이 석조각 2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2023.8.29. (출처: 연합뉴스)

◆KH “봉사·헌신 적극 전개해야”
이 선대회장은 평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며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강조하며 삼성의 각종 사회공헌 사업을 주도했다.

한편 이날 열린 추모식에는 이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김재열 삼성 글로벌리서치 사장 부부 등 유족들이 참석했다. 유족들은 오전 11시께 선영에 도착해 10여분간 머무르며 고인을 추모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천지일보 수원=김정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이목동 소재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25.
[천지일보 수원=김정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이목동 소재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0.25.

삼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던 이 회장은 선친 기일에 맞춰 이날 오전 6시 30분께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 도착한 뒤 한남동 자택에 들러 어머니인 홍 전 관장과 함께 추도식에 참석했다.

지난 19일 이 선대회장 추모음악회에서 만난 유족들은 일주일 만에 열린 추도식에서 다시 한자리에 모여 고인의 업적과 뜻을 기렸다. 유족들에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경계현 사장 등 삼성 현직 사장단 60여명도 오전 10시께 미니버스를 타고 선영에 도착해 차례로 헌화와 묵념 등을 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 회장은 추도식 후 용인 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해 사장단과 함께 이 선대회장 추모 영상을 시청한 뒤 오찬을 함께했다.

[천지일보 수원=김정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들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이목동 소재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아들, 이 사장. ⓒ천지일보 2023.10.25.
[천지일보 수원=김정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들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이목동 소재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아들, 이 사장. ⓒ천지일보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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